빨간 연습 유니폼을 입은 KIA 선수단 중 1명이 마운드에서 배팅볼을 던졌다. 올 시즌 유니폼을 갈아입은 KIA 정성훈(38)이다.
정성훈은 지난 24일 kt와 개막전에서 KBO 리그 역대 최다 경기 출장 기록을 달성한 야수다. 프로야구 역사상 딱 10명만 달성한 2000안타 고지도 지난해 밟았다.
그런 베테랑이 27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삼성전을 앞두고 타석이 아닌 마운드에 올랐다. 잠시 뒤 노란 상자에서 공을 꺼내 잡더니 타자들을 향해 던졌다. 배팅볼 투수를 자청한 것이다. 그렇게 15분가량 배팅볼을 던졌다. 베테랑 선수에게서 흔히 볼 수 없는 모습, 물론 정성훈에게도 낯선 시간이었다.
매번 배팅볼 투수의 공을 받아치던 그가 이번에는 반대로 배팅볼 투수로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후배들의 훈련을 돕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경기 출장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일석이조 효과. 정성훈은 "3루 송구 연습을 하기 위해서다. 한동안 안 던져 봐서…"라며 웃었다.
지난해 11월 LG로부터 재계약 불가 방침을 전해 들은 정성훈은 2차 드래프트에서도 지명을 받지 못했지만, 고향팀 KIA에서 손을 내밀어 선수 생활을 이어 갈 수 있었다. LG에서 최근 몇 년간 1루수 혹은 지명타자로 활약한 그는 KIA에서 경기 후반 대타 혹은 대수비 역할을 맡고 있다. 1999년 해태에 입단할 당시 3루수로 뛴 정성훈이지만, 오랜만에 나서는 만큼 스스로 나서 연습하고 있다. 정성훈은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더 해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3루수로 나선) 경험이 거의 없으니까"라고 말했다.
정성훈의 배팅볼은 진지하다. 그는 "내게 연습 효과가 첫 번째지만, 타석에 있는 선수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되지 않나"라며 "(설렁설렁하면) 기분 나쁠 수 있으니까 진지하게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대선배의 공을 받아친 KIA 타선은 이날 경기에서 홈런 6방을 터뜨리며 17-0 대승을 거뒀다. 구단 관계자는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도 후배들이 정성훈의 수비 범위와 송구 실력을 보고 여전하다며 놀라워했다"고 귀띔했다.
정성훈에게 "앞으로도 배팅볼을 던질 계획이 있냐"고 묻자 돌아온 답은 "던질 사람이 없으면 배팅볼 투수로 나서겠다. 시간이 많이 남으니까…"였다. KIA 타선이 워낙 막강한 탓에 정성훈의 팀 내 입지는 예전과 많이 다른 상황이지만, 팀을 향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8일 경기를 앞두고는 두 차례 프리배팅을 했다. 1차로 주전 선수들과 훈련한 뒤 수비 훈련을 마치고 또 배팅 게이지에 들어서 공을 쳤다. 그는 "많이 해야죠"라며 웃었다.
정성훈은 이제 선발이 아닌 교체로 출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개인과 팀을 위해 꾸준히 준비하고 대비하고 있다. KIA와 정성훈은 그렇게 팀 캐치프레이즈처럼 '동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