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9시 서울 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최은희의 발인식이 진행됐다.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발인이 엄수됐다.
상주인 아들 신정균 감독은 슬픈 표정으로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또한 고인과 같은 시대의 영화계를 공유한 배우 신성일이 유족들을 위로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지난 이틀간 많은 영화인들이 고인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신성일, 윤일봉, 정혜선, 문희, 태현실, 고은아, 김창숙 등의 배우들과 제작자 황기성, 임권택 감독, 이장호 감독,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등이 조문했다.
고 최은희는 한국 근현대사를 온 몸으로 겪어내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1947년 '새로운 맹서'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후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1950~60년대를 대표하는 원토 트로이카로 사랑받았다.
1953년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며 신상옥 감독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다. 1954년 결혼해 130여 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었다.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이 두 사람의 대표작이다.
이후 신 감독과 이혼한 최은희는 1978년 홀로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돼 납북되는 일을 겪었다. 신 감독도 같은 해 납북돼 두 사람은 1983년 북한에서 재회했다. 북한에서 신 감독과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든 최은희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인 최초 해외영화제 수상이었다.
1986년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 극적으로 망명에 성공했다. 10년 넘게 망명 생활을 하다 1999년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귀국 후 안양영화예술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후배를 양성했다. 극단 대표직을 맡고 뮤지컬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2007년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을 펴내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06년 신 감독을 먼저 떠나보낸 최은희는 평소 지병을 앓았다. 최근 건강이 악화돼 지난 16일 결국 영원한 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