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 더 부티크 104호에서는 제54회 백상예술대상 '백상후보작상영제(GV)-택시운전사' 편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모더레이터 장성란 기자의 진행과 함께 '택시운전사' 장훈 감독과 제작사 더 램프의 박은경 대표가 참석해 오랜만에 다시 만난 관객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이 통금시간 전까지 광주에 다녀오면 큰 돈을 준다는 말에, 독일기자 피터를 태우고 아무것도 모른 채 광주로 가게 된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지난해 8월 2일 개봉해 누적관객수 1218만6725명을 동원, 2017년 유일한 1000만 영화로 관객들의 뜨거운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흥행성과 함께 빛난 작품성으로 하반기 각종 영화제 시상식 트로피를 싹쓸이 한 '택시운전사'를 백상예술대상도 외면하지 않았다.
'택시운전사'는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장훈), 남자최우수연기상(송강호), 시나리오상(엄유나)까지 총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번 GV 공식 질문인 "어떤 상을 받고 싶냐"는 첫 질문에 장훈 감독은 "남우주연상?"이라며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백상예술대상 남자최우수연기상을 노리는 송강호를 언급했고, 박은경 대표는 "감독상"이라고 답해 장훈 감독을 으쓱하게 만들었다.
영화·소설 등으로 여러 번 다뤄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다룬 '택시운전사'는 기획 당시 영화계의 환영을 받은 작품은 아니다. 촬영시기와 개봉시기 정권이 바뀌었고 사회적 분위기도 180도 달라졌다. 박은경 대표는 "운이 좋았다"며 겸손을 표했지만 '택시운전사'가 담아낸 진정성은 언제 세상에 나왔어도 관객들의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택시운전사' 기획의 시작은 익히 잘 알려진대로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수상소감에 담긴 '택시기사 김사복 씨에게 감사하다'는 한 줄이었다. 하지만 박은경 대표는 어려운 시기 용기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개인적 사례로 몸소 경험하면서 '소시민의 작은 선의가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의미에 더 동기부여가 됐다는 속내다.
박은경 대표는 "사실 선·악은 불분명하다. 한 사람에게도 다양성이 존재하고, 같은 직업이라 살지라도 여러 모습이 있다. '택시운전사'는 가지각색의 인간 군상을 담아내면서 선택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나 조차도 영화를 만들면서 '어떤 선택을 할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수 많은 고민이 담긴 작품이다"고 말했다.
'택시운전사'에 관객들이 반응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늘 어둡고 묵직하게만 그려졌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광주 밖 제3자의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지점이다. 택시를 이끄는 만섭은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과 다를 바 없는 인물이다.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고, 응원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설정이다.
장훈 감독은 "관객과 만섭은 비슷하다. 서울 택시기사 만섭은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른다. 한국의 보통 사람이다. 어떤 의식보다 본능이 앞선다. 상황에 따른 태도 변화보다 도망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며 "또 기본적으로 밝인 인물인 만섭을 광주 배경과 어떻게 싱크를 맞춰야 할지 어려웠다. 단계적인 과정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광주를 벗어나려 하지만 벗어나지 못한다. 광주와 가장 멀리있던 사람이 부득이한 상황에서 광주의 실상을 목격하며 죽을 뻔한 경험까지 겪는 구성을 원했다. 때문에 만섭을 영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영웅은 광주 시민들이다. 다만 그 상황을 바라보는 것.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도망을 쳤던 그 사람이 시민들이 총을 맞을 때 시선을 돌리지 않고 끝까지 금남로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만섭이 주인공으로 할 수 있는 도달점이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박은경 대표는 "애초 시나리오 속 만섭은 조금 더 괴팍한 느낌이었다. 그런 만섭을 감독님이 러블리하고 사랑스러운 인물로 그려넣어 주셔서 관객으로 하여금 마음을 주게 하고, 그 사람을 따라 광주로 들어가는 여정을 보다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만섭을 연기한 송강호는 그야말로 만섭 그 자체였다. 오로지 연기력 하나로 1000만 관객을 움직이는 송강호의 힘이다.
"송강호 선배님을 생각하고 쓰신 시나리오라고 하더라. 초고를 받았을 때 읽으면서 선배님의 목소리가 음성지원 됐다"며 미소지은 장훈 감독은 "선배님과 '의형제'를 함께 하기도 했지만 '택시운전사'의 만섭은 굉장히 보편적인 역할이라 그 보편적인 인물로 관객들을 설득해야 했다. 굉장히 어려울 수 있는 연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 역시 더욱 송 선배님을 원했다"고 회상했다.
장훈 감독은 "그리고 촬영을 하면서 선배님의 대단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시나리오 속 만섭은 글로 쓰여 있었고, 상황은 있지만 생기는 없었다. 살아있는 인물로 만들어 주신 분이,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표현해 주신 분이 바로 송강호 선배님이다. 찍은 모든 컷, 대부분의 테이크에서 내가 생각했던 답이 아닌 다른 방식의 더 좋은 해답들을 주셨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박은경 대표 역시 "처음에는 거절을 하셨다. 겉으로는 '읽어주신 것 만으로도 감사하다' 속으로는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더라"며 "이제는 호사라고 표현을 하는데, 극장에 걸리는 영화는 감독님이 오케이 한 한 컷이 걸리는 것 아닌가. 하지만 나를 비롯한 스태프들은 모든 컷을 본다. 선배님은 컷마다 연기가 다르고, 그 연기만의 매력이 있다. 다 좋아서 어떤 컷이 가장 좋은 컷인지 고민을 해야 했다. 정말 좋은 배우다"고 동조했다.
완성된 영화에 담기지 못한, 최종 삭제신에 대한 언급은 영화 팬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장훈 감독은 "연출자로서 네 번째 영화를 만들었는데, 작품마다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다시 찍는다고 해도 변수는 있을 수 있다. 난 지금의 '택시운전사'가 같이 참여했던 분들이 만든 최선의 결과라 생각한다"며 "다만 몇 개 잘린 신이 있는데 감독으로서 그것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다. 힌츠페터 기자의 시선으로 전달한 내용도 있었고, 열심히 취재한 수첩을 전달 받았지만 신문에는 싣지 않은 기자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블루레이 DVD 판에는 다행이 넣었다. 배우 분들이 열심히 연기해 준 신들이어서 감안해 봐 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박은경 대표는 "힌츠페터 기자님의 다큐멘터리 '푸른 눈의 목격자'가 5월 재상영 한다. 이 다큐멘터리가 영화의 시작이 되기도 했다. 영화는 다양한 시각을 담을 수 있는 매체지만 처음 기획했을 때 영화계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광주 소재를 다룬 영화들이 이미 많은데 또 보겠냐'는 의견이 상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진심을 표했다.
또 "이미 많이 알려진 이야기라 생각했지만 영화가 개봉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며 "요즘 4.3 사건이 다시 조명되는 것을 보면서 '아픈 역사가 묻히지 않고 어떤 시선으로든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영화·소설 등 어떤 방식으로든 할 수만 있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어떠한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장훈 감독은 "그에 앞서 진짜 진실, 역사적 진실이 명확하게 정립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과 해석은 분분할 수 있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 관계를 비틀어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잡히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알려졌으면 싶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한편 올해로 3년째를 맞은 '백상후보작상영제'는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전 치러지는 시그니처 이벤트다.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GV)로 진행되며, 올해는 5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에 노미네이트 된 '박열(이준익 감독·20일)', '택시운전사(장훈 감독·21일)', '1987(장준환 감독·21일)', '남한산성(황동혁 감독·22일)', '신과 함께-죄와 벌(김용화 감독·22일)' 등 다섯 편의 영화와 감독 및 후보 배우들과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