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나이는 한국 나이로 36세. '노장'으로 불리는 30대 중반이 넘어서도 K리그 빅 클럽 수원의 에이스로 군림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일이다. 노장으로 접어들면서 출전 시간이 급격히 줄어드는 다른 선수들과 확연히 비교되는 장면이다.
염기훈은 어떻게 36세에도 에이스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일까.
지난 22일 인천축구전용구장에서 펼쳐진 2018 KEB하나은행 K리그1(1부리그) 8라운드 수원과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가 끝난 뒤 염기훈을 만났다. 수원이 극적인 3-2 역전승을 일궈 낸 뒤였다. "이겨서 안 피곤하다"고 환하게 웃으며 나타난 염기훈에게 전성기를 지속할 수 있는 비법을 들을 수 있었다.
철저한 자기 관리
염기훈은 수원의 '체력왕'이다.
지난 시즌 K리그1 38경기를 전부 뛴 수원의 유일한 선수다. 리그에서도 총 3명뿐이다. 염기훈과 함께 울산 현대의 오르샤, 지난 시즌 광주 FC에서 뛰었던 송승민이 38경기를 뛰었다.
올 시즌 염기훈의 출장은 계속되고 있다. 올 시즌 치러진 리그 8경기 전 경기에 출전했다. 리그는 상황에 따라 선발과 후반 교체를 번갈아 나섰지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는 전 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ACL 플레이오프를 포함해 H조 조별예선 6경기까지 7경기를 모두 뛰었다. 리그와 합치면 올 시즌 벌써 15경기를 소화했다. 중간에 국가대표팀 소집도 있었다. 그야말로 살인적이다.
염기훈은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힘들다. 시즌 초반에는 모든 경기에 다 풀타임을 뛰어 과부하도 왔다. 대표팀 경기도 있어서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철저한 자기 관리로 극복해 냈다. 몸 상태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염기훈이 개인 훈련을 절대 놓지 않는 이유다.
그는 "나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체력적인 부분이 받쳐 줘야 한다.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프리킥을 차면 내가 원하는 킥이 되지 않는다"며 "잘 쉬는 것이 가장 좋다. 나이가 많다고 마냥 쉬는 것은 아니다. 최고의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러닝과 웨이트 등 꾸준한 훈련이 베스트 기량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강조했다.
코칭스태프 배려
베스트 컨디션은 혼자서 해낼 순 없는 일이다. 서정원 감독 등 코칭스태프들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염기훈은 "내가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서정원 감독님을 비롯해 코칭스태프들이 많은 배려를 해 준다. 운동도 조절시켜 주고 경기 출전도 배려해 준다. 후반에 나가서 체력을 비축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서 감독과 신뢰가 배려의 크기를 키웠다.
그는 "서정원 감독님과 나는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이다. 선발로 뛸 때와 후반에 뛸 때를 잘 조절해 준다. 감독님이 내 의견을 먼저 물어봐 주시고 또 잘 들어주신다"며 "이런 배려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래서 베스트 컨디션을 만들 수 있다. 배려해 주지 않는다면 정말 힘들 것이다.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크다. 코칭스태프에게 항상 감사하다"고 진심을 전했다.
서 감독 역시 "(염)기훈이는 나이가 있다 보니 아무래도 더 많이 신경 쓸 수밖에 없다. 회복 시간을 벌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말 중요한 경기에 선발로 내보내고 그러지 않을 경우 후반에 내보내는 등 출전 시간을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후배들과 선의의 경쟁
염기훈이 에이스로 살아갈 수 있는 핵심은, 의지다.
노장의 대우를 바라지 않는다. 베테랑의 특권 의식도 없다. 후배들과 철저하게 선의의 경쟁을 한다. 나이가 많다고 의지마저 늙은 것은 아니다. 경기 출전 의지와 승리 의지는 염기훈을 따라올 자가 없다.
염기훈은 "나이는 들었지만 어린 선수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강하다. 이런 모습이 경기장에서 보이는 것"이라며 "나이는 많지만 어린 선수들과 경쟁에서 지기 싫다. 나는 젊은 선수들보다 더 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고 어린 선수들 위에서 군림하진 않는다. 젊은 선수들과 소통으로 팀 문제점을 찾는다.
염기훈은 "데얀은 나보다 두 살 더 많다. 데얀과 나 같은 노장 선수들이 어린 선수들과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팀의 좋지 않은 부분을 꼭 짚고 넘어간다. 후배들을 혼내는 방식이 아니라 미팅을 통해 서로 대화한다. 어린 선수들도 노장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다. 서로 받아들인다. 소통이 잘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믿고 신뢰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전북, 울산 그리고 슈퍼매치
수원은 현재 전북 현대에 이어 리그 2위다. 전북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다. 그리고 ACL 16강에 올라 있다. 16강 상대는 울산이다. 최대 라이벌전 '슈퍼매치'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공교롭게도 이 3개 팀과 격돌이 차례로 다가오고 있다.
수원은 25일 경남 FC와 리그 9라운드를 치른 뒤 29일 전북과 10라운드를 펼친다. 그리고 5월 2일 울산과 11라운드에 돌입한다. 그다음 5일 슈퍼매치가 열린다. 9일에는 울산과 ACL 16강 1차전, 16일 2차전이 연이어 열린다.
염기훈은 "전북을 반드시 이기고 싶다. 전북은 1강이다. 최고의 팀이다. 너무도 강한 팀"이라면서도 "수원은 전북을 이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수원도 연승을 달리고 있다. 매 경기에서 골을 넣고 있다. 분위기가 좋다. 기대된다"고 전북전을 기다렸다.
울산에 대해서는 "5월에 울산과 3번을 만난다. 리그에서 만나는 첫 경기가 중요하다. 기선 제압이 필요하다"며 "리그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ACL로 가냐가 중요하다. 분위기를 좋게 타면 울산과 3번 경기 전부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염기훈이 가장 기대하는 경기는 슈퍼매치다. 지난 8일 올 시즌 첫 슈퍼매치는 실망스러웠다. 수비적인 전술로 맞붙은 두 팀은 0-0 무승부를 기록했고, K리그 팬들의 질타를 피할 수 없었다.
염기훈은 "솔직히 전북과 울산전도 중요하다. 하지만 슈퍼매치를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 지난 경기 때 나 자신에게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경기를 보는 팬들도 그랬다"며 "K리그를 더 활성화하려면 슈퍼매치가 재미있는 축구가 돼야 한다. 그러지 못해서 반성하고 있다. 다음 슈퍼매치에는 반드시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서울 역시 달라질 것이다. 열심히 한 번 해 보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