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26·토트넘)은 욕심이 많은 선수다. 유럽 무대에 도전한 역대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중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올 시즌에도 18골 10도움으로 자신의 한 시즌 최다 공격 포인트(28개) 타이 기록을 세웠지만 그는 아직 만족을 모른다. 2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토트넘 트레이닝 센터에서 만난 손흥민은 "내겐 항상 만족이 없다. 나는 모든 부분에서 더 발전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토트넘은 이틀 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 FA컵 4강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1-2로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토트넘 이적 후 첫 우승 트로피를 향해 어느 때보다 의욕적으로 경기에 나섰던 손흥민의 얼굴에도 여전히 그 패배의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리그 경기에서 져도 아쉬운데 이번엔 특별한 생각이 있어서 더 아쉽다"고 말문을 연 손흥민은 "작년에도 (FA컵)4강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이번엔 결승 나가서 좋은 모습 보여주고 싶었는데 조금 많이 아쉽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토트넘에서 남은 시즌 경기들을 잘 마무리하고 월드컵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얘기한 손흥민은 "차근차근 시즌을 잘 마무리해서 정말 중요한 월드컵을 준비하고 싶다"고 말을 이었다. 토트넘에서 시즌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앞으로 다가올 중요한 일정들을 위한 준비가 되는 셈이다.
2018년은 그에게 정말 의미있고 중요한 한 해다. 손흥민은 6월 열리는 러시아 월드컵에 이어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내년 1월 열리는 UAE 아시안컵까지 굵직굵직한 대회들을 앞두고 있다. 손흥민은 "다가오는 모든 대회들이 너무 소중하다. 일단 월드컵을 잘 준비해서 마치고 나면 그 다음은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기대감을 전했다.
한국은 이번 월드컵에서 세계랭킹 1위 독일과 북중미 강호 멕시코, 북유럽의 복병 스웨덴과 조별리그 한 조에 묶였다. 객관적인 전력만 봐도 한국이 가장 열세에 처해있는 것은 분명하다. 손흥민은 "모두 강팀들이라 대결이 기대가 된다. 중요한 건 (월드컵을)대하는 우리 모두의 자세가 달라야 한다는 점"이라며 "월드컵을 한 번 다녀와봤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라, 월드컵이란 무대는 그 어떤 대회와도 다르다는 걸 얘기하고 싶다. 선수들은 물론 구단 관계자들이나 축구팬, 국민 여러분까지 달라져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가 '월드컵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손흥민은 "우리가 정말 약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축구는 백지 한 장 차이라고 하는데, 이런 사소한 차이 하나하나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선수들이 이 사실을 느끼고 받아들여서 경기장에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이스' 손흥민의 이런 경계심이 증명하듯, 월드컵은 결코 호락호락한 무대가 아니다. 특히 강팀들과 한 조에 편성돼 고난의 길이 예정된 한국 축구대표팀엔 더욱 그렇다. 대표팀의 강점과 보완점을 얘기해달란 질문에 손흥민은 "콜롬비아전이나 세르비아전 때처럼 조직적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다면 충분히 좋을 거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조직력을 갖췄을 때 얘기고, 지금은 강점을 얘기하기보다 보완점을 고치는 게 중요하다"고 칼같이 단언했다.
한국의 전력에 대한 냉철한 판단은 계속 이어졌다. 손흥민은 "나 자신보다 월드컵에서 팀이 이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내게 기회가 온다면 당연히 내가 골을 넣어야할 것이고, 다른 선수에게 기회가 간다면 그 선수가 해줘야 한다"며 "확실한 건 우리에게 기회가 많이 오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기회가 오면 그걸 얼마나 섬세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래서 손흥민은 본인 스스로도 더욱 발전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채찍질을 한다. EPL에서 맞이한 세 번째 시즌, 출전 시간에 비한다면 결코 나쁘지 않은 활약을 선보이고 있는 그에게 성적에 대한 만족도를 물었다. 대답은 "내겐 항상 만족이 없다". 손흥민은 "작년 시즌 끝나고도 이 소리를 똑같이 했다. 나는 항상 배고프고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웃었다.
"물론 팬들이 보고 생각했을 때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실 수 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은 사람으로서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한다"고 얘기한 손흥민은 "아직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어리고 배고프고 배울 수 있고 축구를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부분에서 발전해야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월드컵에 대한 각오도 심플했다. "각오는 특별히 필요 없다. 대한민국 사람, 대한민국을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희생한다는 생각이 가장 중요할 뿐"이라고 얘기한 손흥민은 "나 하나 희생하겠다는 생각을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똑같이 갖는다면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사람들이 나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 엄청 부족한 건 알고 있지만, 나를 보고 한국 축구를 보면서 '아 난 정말 행복하구나' 그런 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러시아행 출사표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