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버닝(이창동 감독)'이 본상 수상에 최종 실패했다. 황금종려상은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만비키 가족'에게 돌아갔고, 심사위원대상과 감독상, 각본상 등도 각각 다른 나라, 다른 감독에게 부여됐다.
'버닝'은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를 만나고,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을 소개 받으면서 벌어지는 비밀스럽고도 강렬한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 작품이다. 이창동 감독이 8년만에 선보인 신작으로, 1983년 일본 문학계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가 발표한 단편 '헛간을 태우다'가 원작이다.
경쟁부문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것이지만, 수상을 해서 나쁠 것은 없기에, 또 칸 영화제에 갈 때마다 트로피를 손에 쥔 이창동 감독이기에 '버닝' 초청이 확정됐을 때부터 수상에 대한 기대감이 표출된 것은 사실이다.
특히 16일(현지시간) 칸 현지에서 공식 스크리닝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 후 스크린데일리 3.8점(역대 최고점·4점 만점), 아이온시네마 3.9점(5점 만점), ICS(인터내셔널 시네필 소사이어티, International cinephile society) 4.83점(5점 만점) 등 경쟁부문에 진출한 작품 중 최고점을 싹쓸이 하면서 한국 최초 황금종려상의 꿈도 잠시나마 꾸게 만들었다.
하지만 평점은 수상과 사실상 무관하고, 결국 수상자는 유아인의 말처럼 케이트 블란쳇 심사위원장을 비롯한 심사위원들이 선정하는 것이기에 '버닝'의 수상 역시 속단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버닝'은 최종 수상에 실패했다. 이는 오히려 60회 '밀양' 전도연 여우주연상, 63회 '시' 각본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다시금 확인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 영화제 기간내내 '버닝' 팀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과 영화인으로 주목 받았다. 심사위원의 눈에 1등으로 들지는 못했지만 거장 사전에 '빈 손'은 없었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ederation Internationale de la Presse Cinematographique·FIPRESCI·피프레시)이 수여하는 국제비평가연맹상은 '버닝'의 차지였고, 신점희 미술감독은 힌국 영화인으로서는 두번째 벌칸상(The Vulcan Award of the Technical Artist)을 받았다. 따뜻한 위로가 된 '2관왕'이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은 1930년부터 프랑스에서 시작된 전세계의 전문영화비평가, 영화기자, 각국의 단체로 구성된 조직이다. 2013년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4년 '윈터 슬립', 2015년 '사울의 아들', 2016년 '토니 에드만', 2017년 '120BPM' 등 작품이 수상했으며, 한국 영화는 지난 2005년 감독주간에서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가 받은 바 있다.
이창동 감독은 "감사하다. 여기는 레드카펫도 없고 플래시도 없지만 레드카펫은 비현실적이었는데 여기는 현실적이다"며 "'버닝'은 현실과 비현실, 있는 것과 없는 것, 보여지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탐색하는 미스터리다. 여러분이 그 미스터리를 안아주셔서 감사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CST(Commission Superieure Technique de l’Image et du Son)에서 선정한 심사위원이 심사하는 벌칸상은 칸 영화제 공식 초청작 중 가장 뛰어난 기술적인 성취(미술·음향·촬영)를 보여준 작품의 아티스트를 선정해서 수여하는 상이다. 한국 영화인이 벌칸상을 수상한 것은 지난 69회 '아가씨(박찬욱 감독)'의 류성희 미술감독이 최초다. 이어 '버닝'의 신점희 감독도 수상하면서 한국 영화계는 두 명의 벌칸상 수상자를 배출해 냈다.
한국 영화는 69회 '아가씨', 70회 '옥자(봉준호 감독)', '그 후(홍상수 감독)', 그리고 올해 '버닝'까지 3년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모두 본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그 누구도 수상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다. 이창동 감독은 과거 "칸은 올림픽 같은 경기가 아니기 때문에 상에 큰 욕심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오랜 시간이 걸려도 꾸준히 활동을 해 주는 것에 감사한 거장의 발자취다.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사진= 칸(프랑스) 박세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