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 포르투갈팬 카를로스 마르퀘스는 기자에게 “호날두는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라고 외쳤는데, 그의 목에는 증명사진과 이름을 넣고 코팅된 카드가 걸려있었다.
이 카드는 러시아 월드컵에서 사상 첫 도입된 '팬 ID(Fan ID)'다. 관중도 경기티켓 뿐만 아니라 신분을 증명하는 AD가 있어야 경기장에 입장할 수 있다. 이른바 ‘관중 신분증’인 셈이다.
러시아는 팬ID 50만개 이상을 제작했다. 러시아는 전 세계 면적이 1위고, 이번 대회는 11개 도시 12개 경기장에서 열린다. 테러 방지는 물론 훌리건(극성팬)과 인종차별주의자 색출 및 출입금지가 주목적이다. 러시아와 잉글랜드 훌리건은 프랑스에서 열린 유로2016에서 거리에서 폭력사태를 벌여 30여명이 다친 적이 있다. 팬ID가 있으면 신분파악이 쉬워 사전예방이 가능하다.
팬ID 50만개 중 러시아 연방 시민이 50%인 25만개를 신청했다. 미국이 2만2500개, 멕시코가 1만6000개, 중국이 1만4500개, 독일이 1만600개 등이다. 축구팬들은 사전에 우편으로 배송받거나, 공항과 경기장 인근 팬ID 발급센터에서 수령할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3일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과 함께 소치를 찾아 팬ID를 홍보하기도했다.
러시아 루즈니키 스타디움 인근 ‘팬ID 발급센터’는 분주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축구팬들은 은행에서 대기표를 뽑듯 순번을 기다렸다. 등록하고, 발급받고, 픽업하는 3단계 과정을 거쳤다.
러시아 축구팬 안톤은 “5분 만에 팬ID를 발급 받았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센터 관계자는 "하루에 보통 1000~2000명, 많으면 3000명이 찾는다. 인터넷으로 미리 등록했다면 3~5분, 사전등록을 안했더라도 7~10분이면 발급이 마무리된다”면서 “팬ID 제도의 가장 큰 이유는 safety(안전)고, 배드 가이와 테러리스트를 체킹하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팬ID 수령자는 개최도시 연결 열차와 경기당일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팬ID는 대회기간 러시아 비자도 대체한다.
하지만 팬ID를 신청하고도 러시아 입국을 불허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ABC뉴스는 지난 3일 “호주 축구팬 아론 캄이 팬ID를 받은 뒤 신체적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입국 불허통보를 받았다. 수백만원 상당의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공항에서 흑인이나 이슬람계 축구팬들이 팬ID가 있어도 입국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서 만난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무엇보다도 안전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분명 유익한 제도다. 다만 일부팬들이 불편함을 호소해 동전의 양면성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