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러시아 사란스크 모르도비아 아레나. 2018 러시아 월드컵 B조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포르투갈에 0-1로 뒤진 후반 8분. 이란 골키퍼 알리레자 베이란반드(26·페르세폴리스)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맞았다. 수비수의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얻어낸 포르투갈 간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3·레알 마드리드)가 직접 키커로 나섰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웃은 쪽은 호날두가 아닌 베이란반드였다. 호날두가 찬 페널티킥은 방향을 읽고 잽싸게 몸을 날린 베이란반드가 정확하게 막아냈다. 자칫 이 골로 이란이 포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 선방 하나가 흐름을 바꿨다. 이란은 후반 추가 시간 골로 강호 포르투갈과 1-1 무승부를 거두면서 조별리그 최종 1승1무1패(승점 4)로 아쉽게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데 베이란반드의 선방이 역할을 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통해 한국에도 익숙한 베이란반드는 이번 대회 본선 조별리그 3경기에서 단 2골만 내주는 '0점대 방어율'을 펼쳐보였다.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의 강호들과 한 조에 편성돼 수난을 당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베이란반드를 주목하는 해외 언론들은 이날 활약상 못지 않게 그의 인생사(史)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역경에도 꿈을 잃지 않고 한 나라를 대표하는 골키퍼가 돼 골문을 지킨 스토리 때문이다.
영국 가디언, BBC에 따르면 베이란반드는 쿠르드족의 유목민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한 살림에 보탬이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13세 즈음에 수도 테헤란에 상경해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돈이 없어 노숙인들이 많은 아자디 타워 근처에서 노숙해기도 했다. 베이란반드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어느날 자고 일어났더니 사람들이 나를 위해 동전을 떨어뜨리고 온 걸 알아치렸다. 그들은 내가 거지인 줄 알았던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지역팀 코치를 통해 의류공장, 세차 가게, 피자 배달 등을 하면서 돈을 벌던 그는 어느날 세차를 하다 전 이란대표팀 스타 공격수 알리 다에이를 우연하게 보기도 했다. 베이란반드는 "다에이에게 도와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기엔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온갖 어려운 환경에도 베이란반드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축구팀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을 어필했다. 마침내 2008년 나프트 테헤란의 청소년 팀에서 그를 불렀다. 베이란반드는 "그 팀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결코 오늘날 이 레벨에 닿지 못했을 것이다"고 했다. 이후 이란 23세 이하 대표팀과 나프트의 성인팀까지 올라선 그는 2016년 이란 명문 페르세폴리스 주전 골키퍼 자리도 꿰찼다. 그리고 2015년부턴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의 눈에 들어 이란대표팀 주전 골키퍼로도 떴다. 이어 모든 축구 선수들이 꿈꾸는 월드컵 무대도 밟았다.
한때 노숙자였던 처지에서 세계 최고의 축구 스타가 찬 페널티킥을 막은 사나이로 거듭난 그를 외신들은 높이 평가했다. 인도의 ANI는 "한때 노숙자였던 이란 골키퍼가 호날두의 페널티킥을 막아내 각광받았다"고 전했고, 뉴질랜드 헤럴드는 "과거의 삶, 고난을 되돌아보면, 베이란반드의 서사적인 삶의 이야기는 전세계 수백만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