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48)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6일(한국시간) 베이스캠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3차전 독일전이 열리는 카잔에 입성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보다 덥고, 2차전 격전지였던 로스토프나도누보다 조금 시원한 바로 이 땅, 카잔에서 신태용호의 월드컵 16강 진출 도전 결과가 정해진다. 이기면 희망, 지면 절망이다.
한국은 현재 F조 최하위다. 1998 프랑스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조별리그 1, 2차전에서 모두 패했다. 2패를 떠안은 채 카잔에 입성한 대표팀이 16강 진출이라는 희망적인 결과와 함께 다시 비행기에 오르려면 복잡한 경우의수가 필요하다. 독일을 이기는 것은 물론이고 최소 2골 차 승리는 거둬야 전제 조건이 완성된다. 그 뒤엔 같은 시간에 열리는 멕시코-스웨덴전 결과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한국이 독일에 2골 차 이상으로 승리한다는 가정하에, 만약 멕시코가 스웨덴을 잡으면 16강 진출, 멕시코가 스웨덴에 패하면 16강 좌절이다. 우리도 잘해야 하고, 멕시코도 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경우의수를 바라보는 시선들은 매우 회의적이다. 상대가 너무 강하다. 2014 브라질월드컵 우승팀 독일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에 올라 있는 팀이다. 아무리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가 있고 1, 2차전에서 보여 준 경기력이 불완전하다 해도 '세계 1등’이 주는 위압감을 무시하긴 쉽지 않다. 카잔 입성 이틀 전, 베이스캠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훈련 때 신 감독이 "독일도 해볼 만하다는 평가가 있다"는 취재진의 발언에 쓴웃음을 지은 이유다. 신 감독은 "독일이 왜 FIFA 랭킹 1위인지 알아야 한다"는 말로 세간에 떠도는 '해볼 만한 상대, 독일’이라는 평가를 일축했다. 맞는 말이다. 심지어 FIFA 랭킹이 57위로 처져 있는 한국 입장에선 1위 독일은 마냥 버거운 상대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이겨야 한다. 신 감독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말이 딱이다. 최강의 상대에게 2골 차 이상 승리를 거둬야만 16강 진출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이 완성된다. 문제는 그 바늘구멍을 통과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란 점이다. 이끄는 신 감독도, 뛰어야 하는 선수들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톱클래스 선수들과 맨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선수들은 골치가 아프다.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박주호(31·울산 현대)와 기성용(29·스완지 시티)이 지난 25일 대표팀 훈련에 함께한 이유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기성용과 박주호가 호텔에 있는 게 더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서 훈련장에 동행했다"며 "훈련할 수는 없지만 동료들을 응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조에서 일어난 '이변’들은 신태용호에 어느 정도 희망을 준다. 개막전에서 개최국 러시아에 대패하며 '아시아의 수치’로 낙인찍혔던 사우디아라비아는 26일 조별리그 A조 마지막 경기서 이집트를 2-1로 꺾고 24년 만에 월드컵 첫 승을 거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FIFA 랭킹은 67위고 이집트는 45위로 22계단이나 차이가 난다. 더구나 이집트엔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 모하메드 살라(26·리버풀)가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살라에게 선제골을 내주고도 뚝심 있게 맞서 역전승을 일궈 냈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30·바이에른 뮌헨)가 있는 폴란드는 FIFA 랭킹 8위로 강팀이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2경기 만에 짐을 쌌다. 톱 시드를 받은 폴란드가 1, 2차전 연패로 조기에 탈락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리오넬 메시(31·바르셀로나)라는 '신급’ 공격수를 보유한 FIFA 랭킹 5위 아르헨티나 역시 1차전에서 아이슬란드와 1-1로 비긴 데 이어 2차전서 크로아티아에 0-3 완패를 당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반드시 골리앗이 이기란 법은 없는 것이 축구다.
아무리 FIFA 랭킹이 높은 강팀이라도, 월드컵이라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이변 앞에선 대책이 없다. 결국 랭킹은 숫자일 뿐이다. 선수들도 '한번 해보자’는 의욕으로 가득 차 있다. 홍철(28·상주 상무)은 "독일이 세계 랭킹 1위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이겨야 희망이 있단 점에선 우리와 비슷하다"며 "공은 둥글고 우리가 못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57위 신태용호가 1위 독일을 상대하는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