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의 컷인] 홍명보, 신태용도 못 버텼는데… 우리가 할리호지치의 입을 감당할 수 있을까
등록2018.07.18 06:00
2018 러시아월드컵이 16강 진출 좌절로 끝나고, 신태용(48)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계약 기간 종료를 앞둔 7월 중순. 대표팀 사령탑 선임 문제가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유독 많이 언급되는 이름이 있다. 바히드 할리호지치(66) 전 일본 축구대표팀 감독이다.
김판곤(49)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이 차기 사령탑 후보를 물색하기 위해 유럽으로 출장을 떠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외국인 '명장'들이 후보군으로 떠올랐다. 브라질 출신인 명장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70) 감독, 멕시코를 16강전으로 이끈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57) 감독,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레스터 시티의 '우승 동화'를 이끌었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67)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대부분은 현지 언론을 바탕으로, 외신을 통해 대한축구협회(KFA)와 접촉설이 제기된 감독들이다. 할리호지치 감독 역시 보스니아 영자 신문인 '사라예보 타임스'를 통해 '할리호지치 감독이 월드컵에서 독일을 꺾었던 한국 대표팀 부임에 가까워졌다. KFA가 그에게 매우 관대한 제안을 보냈다'는 보도가 나와 한국 부임설에 힘이 실렸다.
KFA는 일단 이러한 보도를 부정하고 있다. KFA가 부정한 사령탑 후보는 스콜라리 감독과 할리호지치 감독이다. KFA 관계자는 "이들은 후보 리스트에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선을 그었다. 유럽 언론을 통해 처음으로 할리호지치 감독의 한국행 가능성이 제기됐을 때도 "사실무근"이라며 일축했던 만큼, KFA의 구상에 할리호지치 감독의 이름이 없는 것은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김 위원장이 유럽 현지에서 할리호지치 측과 접촉했을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불과하다.
할리호지치 감독 선임설을 지켜보는 심정은 무척 복잡하다. 사실 할리호지치 감독은 한국에 무척 익숙한 인물이다. 알제리 대표팀을 맡았던 2014 브라질월드컵 당시 자국 언론의 비난 속에서 한국을 4-2로 완파하고 기자회견에서 박수갈채를 받았다. 브라질월드컵이 끝난 뒤에는 일본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했으나 본선 직전인 지난 3월 경질됐다.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지 못한 것은 둘째치고, 선수들과 불화로 사실상 쫓겨났다. 지도자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긴 이 사건으로 할리호지치 감독은 일본축구협회(JFA)를 상대로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알제리 그리고 일본을 거치면서 할리호지치 감독이 보여 준 모습에는 큰 변화가 없다. 직선적이고 투박한 체력 위주의 축구 스타일, 뜻을 꺾지 않는 독선적인 성격, 식사 시간부터 외출, 귀가 시간까지 선수들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자신의 지시를 어기거나 규율, 전술에 맞지 않을 경우 아무리 유명한 선수라도 가차 없이 제외하는 고집. 수틀리면 언론이나 협회와 전쟁도 불사하지 않는 거침없는 '입'까지 그대로다. 바로 이 '입'이 문제다.
할리호지치 감독 부임설을 반기는 대중의 반응을 보면서 2014 브라질월드컵 때의 홍명보(49) 전 감독(현 KFA 전무이사) 그리고 이번 월드컵의 신 감독을 떠올렸다. 당시 홍 전무이사는 의리 축구 등 여러 논란에 휘말려 사퇴하면서 "K리그서 최고의 선수들이라도 유럽에선 B급일 수밖에 없다"고 발언해 비난 세례를 받았다. 한국 축구 레전드였던 홍 전무이사의 'K리그 B급 발언'은 그에게 떼어 낼 수 없는 꼬리표로 남았다. 아직도 홍 전무이사와 관련된 기사 댓글에 그가 했던 'K리그 B급 발언'이 거론되고 있다. 신 감독도 '말실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월드컵을 앞두고 오스트리아 레오강 전지훈련에서 치른 볼리비아와 평가전 이후 "김신욱(30·전북 현대) 기용은 트릭"이라고 한마디 했다가 대회 기간 내내 '트릭'으로 조롱당했다. 예전처럼 기사로 전해지는 말 외에도 각종 동영상으로 감독의 말투 하나하나까지 지켜볼 수 있게 된 지금, 팬들은 이러한 감독들의 '말실수'에 관대하지 않다.
할리호지치 감독이라면 이보다 더 심한 말도 거리낌 없이 할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 감독의 객관적인 시선에 특유의 노골적인 화법이 더해지면 K리그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이 날아들 수도 있다.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다른 나라와 우리를 비교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당장 올해 3월, 일본 사령탑으로서 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우크라이나와 평가전에서 1-2로 패한 뒤 "골을 넣는 건 어느 팀이나 중요한 일이지만 (일본에는)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없다"고 말해 일본 언론은 물론, 팬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우리가 할리호지치 감독의 '입'을 감당할 수 있을까. 물론 KFA가 부임설을 극구 부정한 이상, 할리호지치 감독이 한국에 올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