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 구단의 재계약 의사를 뿌리치고 일본으로 건너간 외국인 선수들이 일본 무대에서 고전하고 있다.
한화와 LG는 지난 시즌 종료 이후 윌린 로사리오(타자)와 데이비드 허프(투수)를 재계약 대상자로 분류했다. 하지만 거액의 조건을 내밀며 유혹하는 일본 구단과 계약해 한국 무대를 떠났다. 로사리오는 2년 최대 750만 달러(추정, 약 85억원)에 한신과, 허프는 1년 130만 달러(약 15억원, 인센티브 별도)에 야쿠르트와 계약했다.
로사리오와 허프 모두 '현미경 야구'에 고전하며 한 차례씩 1군에서 제외됐다. 로사리오의 성적은 타율 0.230 4홈런 22타점에 그쳤다. 그의 장타력에 기대를 걸고 4번 타자의 중책을 맡겼던 한신은 크게 실망했다. 현지에서 조기 퇴출 가능성까지 새어 나오고 있다. 허프는 13경기에서 1승6패, 평균자책점 5.05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남긴 채 현재 2군에 내려간 상태다.
두 선수를 놓친 한화와 LG에는 전화위복이다. 두 선수를 대신해 영입한 제러드 호잉(한화·타율 0.320 21홈런 77타점)과 타일러 윌슨(LG·8승3패, 평균자책점 3.01)이 맹활약하며 '저비용 고효율'의 진수를 보여 주고 있어서다. 2017년 로사리오와 허프의 KBO 리그 연봉은 각각 150만 달러와 140만 달러였고, 새 외국인 선수 호잉과 윌슨은 2018년 각각 70만 달러와 80만 달러에 계약했다. 거의 반값이다.
국내 무대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외국인 선수의 부진은 로사리오와 허프뿐 아니다. 2014~2015년 삼성 소속으로 타율 0.297 79홈런 235타점을 쓸어담은 야마이코 나바로는 지바 롯데에서 타율 0.217 10홈런 44타점에 그쳐 1년 만에 퇴출됐다. 2014년 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밴 헤켄은 2015년 종료 뒤 일본 세이부와 계약했으나 승리 없이 4패 평균자책점 6.31로 부진해 시즌 도중 방출됐다. 밴 헤켄은 다시 넥센으로 돌아와 15승10패(평균자책점 3.64)를 더 남겼다. 그나마 2013~2014년 삼성에서 뛴 릭 밴덴헐크가 소프트뱅크에서 35승16패 평균자책점 3.41을 기록하며 4년째 활약하고 있다.
KBO 리그를 호령한 외국인 선수들이 일본 무대에서 고전하는 현상은 '한국 야구'의 씁쓸한 이면으로 볼 수 있다. 양 리그 간의 수준 격차가 어느새 다시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이순철 SBS 해설위원은 "우리는 각 팀에서 투수 1~2명만 정교한 제구력을 갖췄다면, 일본은 4명 많으면 5선발까지 제구력이 정교하다"며 "상대의 제구력이 좋으면 아무래도 장타를 만들어 내기 쉽지 않다"고 했다. 대표팀 전력 분석을 맡았던 이종열 SBS Sports 해설위원은 "국가 대항전을 보면 일본은 전통적으로 타자보다 투수들이 좋았다. 타자들은 공 한 개 차이로 안타든 범타든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는데, 일본 투수들이 우리 선수들보다 제구력이 좋다"며 "KBO 리그에서 성공한 외국인 타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성공하기 쉽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일본 선수들은 실투 확률이 낮다"면서 "프리미어 12 준결승전에서 선발투수 오타니 쇼헤이(7이닝 무실점 11탈삼진)에 고전했다. 오타니는 직구 구속이 시속 160㎞를 넘고 커브도 시속 145㎞까지 나온다. 반면 우리가 공략한 노리모토 다카히로는 직구 구속이 시속 150㎞ 정도 나온다. 현재 KBO 리그에서 시속 150㎞ 이상을 던지는 투수는 소사 정도밖에 없다. 일본은 그런 선수들이 많다"며 구속에서도 차이를 설명했다.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은 과거와 현재를 비교 분석했다. 김 전 감독은 "타이론 우즈가 일본으로 건너가 요코하마와 주니치에서 뛰면서 홈런왕을 차지하는 등 최고의 거포가 된 비결은 결국 KBO 리그에서 여러 변화구에 대한 적응을 마쳤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당시엔 정민태·정민철·송진우·구대성·손민한·박명환·이대진 등 리그 투수의 질이 지금보다 더 높았다"며 "로사리오가 뛰었던 2016년과 2017년엔 KBO 리그에 뛰어난 투수가 손꼽힐 정도로 적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을 비교하면 양과 질에서 큰 차이가 난다"고 했다. 이종열 해설위원도 "타이론 우즈는 한국을 거쳐 일본에 간 타자 중 유일하게 성공을 거뒀다. (여느 외국인 선수와 달리) 스트라이크를 때려 내는 선수가 아니라 스트라이크에 비슷한 공을 때려 내는 선수였다"며 "(최근 건너간 선수들이 고전하는 데는) 일본 투수들의 섬세함과 떨어지는 변화구 구사가 (KBO 리그보다) 좋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KBO 리그를 거쳐 간 외국인 투수들의 부진 역시 이런 차이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일본 투수들이 정교한 제구력을 자랑하는 만큼 타자들도 마찬가지다. 이순철 해설위원은 "우리 타자들은 거칠게 대응하는 반면 일본 타자들은 콘택트 위주로 투수를 괴롭힌다. 장타력은 우리보다 떨어지지만 2스트라이크 이후 볼카운트에 몰리면 파울을 쳐서라도 끈질기게 상대한다"고 했다. 투수들이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좀 더 정교한 제구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김 전 감독은 "KBO 리그에서 거둔 성공이 일본에서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로사리오와 나바로의 일본 실패는 한국 야구가 간과하면 안 되는 '결과'다"고 강조했다.
환경의 차이도 간과할 수 없다. KBO 리그는 외국인 선수를 팀당 3명까지 데리고 있을 수 있는 반면, 일본은 제한이 없다. 웬만해선 출전이 보장되는 한국과 달리 일본 무대에선 말 그대로 무한 경쟁이 펼쳐진다. 조금 부진하면 가차 없이 제외되거나 2군행을 통보받는다. 한신은 로사리오가 부진하자 이를 메우기 위해 에프렌 나바로를 영입했다. 한국과 일본은 시장 규모와 구단 투자 등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구단의 지원과 보살핌에 있어서도 외국인 선수들은 한국과 일본 무대의 차이를 몸소 경험한다. 이런 데에서 심리적인 영향을 받고, 그라운드에서 차이가 드러나기도 한다. 이종열 해설위원은 "로사리오 사례를 보면 구단은 얼마든지 '다른 선수로 대체하면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한국보다 선수 폭이 넓은 일본이 외국인 선수를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와 조금 다르다"고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