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지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한 전 정무비서 김지은씨가 “이 사건의 본질은 피고인이 내 의사를 무시하고 권력을 이용해 성폭행한 것”이라며 “이에 대해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다면 피고인과 다른 권력자들은 괴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27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조병구) 심리로 열린 안 전 지사의 간음ㆍ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ㆍ강제추행 혐의에 대한 결심공판에 출석해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안 전 지사는 누구보다 자신의 권력을 잘 알았다. 지위를 이용해 약한 사람의 성을 착취하고 영혼까지 파괴했다”며 “(안 전 지사가) ‘나는 어떤 여자와도 잘 수 있다’ 등의 말을 했다. 그건 왕자병이다”고 했다.
김씨는 이날 법정에서 지난 3월 미투 폭로 이후 받았던 고통을 소상히 털어놨다. 그는 “고소장을 낸 뒤 통조림 속 음식처럼 죽어 있는 기분이었다. 악몽 같은 시간을 떠올려야 했고, 기억을 유지해야 했다”며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았다. 피고인과 그를 위해 법정에 나온 사람들의 주장에 괴로웠다”고 했다.
이어 “자책도 후회도 원망도 했다. 밤에 한강 가서 뛰어내리려고도 했다”면서도 “내가 유일한 증거인데 내가 사라지면 피고인이 더 날뛰겠구나 생각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는 길이라 생각해 생존하려 부단히 애썼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또 재판 과정을 언급하며 “내 개인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혀를 차고 어깨를 떠는 변호사를 봤다. 정조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죽고 싶었다”며 “나를 ‘마누라 비서’라는 처음 듣는 별명으로 몰아갔는데 나는 한 번도 (안 전 지사에게) 이성적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도망치면 되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위력이 있는 관계에서 그럴 수 있겠나”라며 “지사 사람들에게 낙인찍히면 어디도 못 간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평판조회가 중요한 정치권에서 지사 말 한마디로 직장을 못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가장 힘든 것은 안 전 지사의 이중성이었다”며 “외부에서는 젠더 민주주의 등을 말했지만 지지자들 만나는 것도 피곤해했고, 차에서 내리기 전에는 인상을 썼다. 꾸며진 이미지로 정치하는 안 전 지사가 괴물 같아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 전 지사를 향해 “피해자는 나만이 아니라 여럿 있다. 참고 숨기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제일 앞줄의 한 사람일 뿐”이라며 “피고인에게 꼭 말하고 싶다. 당신이 한 행동은 범죄다. 잘못된 것이고 처벌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재판부를 향해서도 “이 사건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다면 피고인과 다른 권력자들은 괴물이 될 것”이라며 “나는 이제 일도 없고 갈 곳도 없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희망만이 나의 희망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