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국가대표 강보라가 지난달 25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인터뷰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앙일보 김성태 기자
"아시안게임은 올림픽 다음으로 큰 대회잖아요. 긴장은 되지만, 빨리 시합에 나가고 싶어요."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태권도 국가대표 강보라(17·성주여고)는 두 손을 꼭 모으며 말했다. 당장 내일 경기에 나서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찬 표정이었다. 강보라는 오는 18일 개막하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여자 태권도 49kg급에 출전한다. 이번 대회 여자 5체급 중 4체급 석권을 바라보는 김종기 남녀 태권도대표팀 총감독은 "강보라는 남자팀 간판 이대훈과 더불어 가장 확실한 금메달 후보"라고 말했다.
강보라는 혜성같이 나타난 여자 태권도의 '무서운 10대' 선수다. 고등학교 2학년, 17세 강보라는 지난 2월 2014 리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소희를 꺾고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가 됐다. 생애 첫 성인 국제 대회였던 아시아선수권(5월)에서 세계 랭킹 1위 웅파타나키트 패니팍(태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5월 아시안게임 선발전 결승에선 세계선수권 우승자 심재영을 이기고 태극마크를 달았다.
김 감독은 "지도자 생활을 30년 이상 했지만, 선수의 팬이 돼 보긴 처음"이라면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강)보라는 보는 이를 빠져들게 하는 선수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보라가 경기에 나서면 (세계 태권도계가) 시끌시끌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김성태 기자
강보라는 165cm로 경쟁 선수들에 비해 키가 큰 편이 아니지만, 근접전의 고수로 불린다. 주 무기인 화려하고 타점이 높은 얼굴 차기 앞에서 상대 선수들은 속절없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을 만큼 현란한 발차기의 비밀은 '택견'이다. 강보라는 택견 전수자인 아버지 강호동 성주중앙초 태권도부 코치에게 네 살 때부터 택견을 배웠다. 여섯 살 때 시작한 태권도보다 2년 빠르다.
김 감독은 "보라가 택견 몸놀림이 배어 있다 보니, 발차기가 남다르다. 얼굴을 공격할 땐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발차기가 나오기 때문에 베테랑 선수도 당황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아직 고교생이라는 점이 기대된다"면서 "체력과 기술적으로 정점에 오를 2년 뒤 도쿄올림픽에선 무시무시한 선수가 돼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지독한 체력 훈련은 발차기의 위력을 배가했다. 강보라는 대표팀 내에서 알아주는 연습 벌레다. 그래서 별명도 '깡보라' '쌈닭'이다. 승부욕이 워낙 강해 러닝 머신에서 뛸 때도 남자 선수들과 같은 속도인 18km/h로 고정하고 뛴다. 남자 선수와 한 스파링에서 지기라도 하는 날엔 눈물을 훔치며 특훈에 매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 감독은 "보라를 여고생으로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떤 훈련을 해도 이를 악물고 끝까지 해낸다"면서 "다른 선수들은 다 나가떨어지는 쪼그려 뛰기를 보라가 기어이 1000개를 채우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강철 체력을 갖춘 그는 쉬지 않고 상대를 몰아친다. 강보라가 자신의 첫 오픈 대회였던 제주 코리아오픈에서 세 경기 연속 20점 차 이상 승리를 거둔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결승에서도 복명 이란의 말라코티칸 마리얌을 50-12로 크게 이겼다.
무시무시한 발차기를 자랑하는 강보라도 자신의 우상을 묻는 질문엔 영락없이 소녀 미소를 지었다. 강보라의 롤모델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3연패를 노리는 한국 태권도의 간판스타 이대훈이다. 그는 "방탄소년단이나 엑소도 좋아하지만, 내 아이돌은 운동을 잘하면서 얼굴까지 잘생긴 (이)대훈이 오빠다. 어렸을 때부터 롤모델이었던 사람과 매일 같은 매트에서 훈련할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며 배시시 웃었다.
김 감독은 "보라가 이대훈을 롤모델로 삼아서 그런지 성실한 훈련량과 뛰어난 실력이 꼭 닮았다. '여자 이대훈'으로 불러도 손색없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강보라는 이대훈과 나란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거는 꿈을 꾼다. 그는 "자기 전에 금메달을 딴 내 모습을 상상한다"면서 "꼭 꿈을 이뤄 '여자 이대훈' 같은 선수가 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