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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719. 인생의 타이밍
인생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타이밍을 놓친 뒤 이를 후회하곤 한다. 공부도, 사업도, 연애도, 직장에도 타이밍은 절실하다. ‘만약 그때 ~을 했더라면’으로 시작하는 후회를 안 해 본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전생과 전전생을 모두 기억하기에 타이밍의 중요성을 더 잘 알고 있다. 두 번의 생 모두,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피를 토하면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전생에는 누군가 내 목숨을 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잠시 방심한 틈에 당하고 말았다. 이번 생은 시대도 다르고, 내가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전생과 전전생의 기억 때문에 같은 일이 반복될까 봐 노심초사했던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 악성뇌종양으로 네 번에 걸친 감마나이프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다. 답답했던 병원 생활이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하려던 찰나, 그만 심각한 위출혈이 발생되고 말았다. 엄청난 양의 피를 토하면서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들어오게 됐다.
입원한 뒤에도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병원에서 수술을 마친 뒤 병실 침대에 누워서 회복을 기다리던 중 갑자기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마침 병문안을 온 후암 회원 중에 의사 두 분이 있어 의료진이 오기 전까지 기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만약 그 피가 폐로 흘러갔다면 정말 위험할 수 있었다.
마침 병원은 간호사 선생님이 교대하는 타이밍이었다. 나와 안면이 있던 간호사 선생님이 위급한 상황에 빠지자 바로 달려와 정성을 다해 내가 피를 모두 토해 낼 수 있도록 도와줬다. 정신을 막 잃으려던 찰나 간호사 선생님의 절실한 목소리가 들렸다. “병원은 사람을 살리는 곳입니다. 절대 정신을 놓지 마세요. 나는 20년 경력입니다. 이렇게 피를 토하시고도 사시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절대 안 돌아가십니다!”
순간, 정신이 들었다. 잠시 뒤 오전 1시, 응급수술이 시작됐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만약 내가 피를 토하던 순간, 후암 회원인 의사 두 분이 내 곁에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또 의료진들이 병실에 도착하기 전 나와 인연이 있던 간호사 선생님이 헌신적으로 나를 간호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만약 정신을 잃고 쓰러져 피를 토해 내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오전 1시에 응급수술을 시작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다행히 병세는 기적적으로 호전됐고, 2주 만에 회복해 퇴원할 수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내 팔목의 환자용 팔찌를 가위로 끊어 주면서 말했다. “다시는 병원에서 만나면 안 됩니다.” 순간 교도소에서 나온 기분이라고나 할까. 병원에 올 때는 누워서 구급차를 타고 왔는데 퇴원할 때는 비록 부축을 받았지만 걸어서 나올 수 있었다.
내가 퇴원하던 날,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됐다. 나와 돼지띠 띠동갑인, 하나뿐인 이모님께서 올해 96세로 돌아가셨다는 부고였다. 4년 전, 암 투병 때는 역시 나와 돼지띠 띠동갑이셨던 고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았다. 두 분 모두 90세가 넘으셨지만 우연이 아닌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안타깝고 슬펐다. 게다가 몸이 아파 갈 수도 없는 처지여서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이제는 살아가는 인생이 아닌, 살려지는 인생이 됐다. 내가 살려지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전생과 전전생에는 모든 타이밍이 나를 죽음으로 몰아갔지만, 이번 생은 달르다. 모든 타이밍이 나를 살려지게 만들고 있다. 사람들은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좋았을 때 ‘운이 좋았다’고들 한다.
사실 그 운도 이미 정해진 프로그램이 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전보다 더 열심히 후암을 위해 살고 싶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