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까바르 자카르타] '손흥민 따라 1500km 달렸다'...그라운드 밖에서 뛰는 자카르타 한인들
등록2018.08.31 06:00
"1500km가 아니라 1만5000km를 달려도 상관없습니다. 한국 축구가 금메달을 딸 수만 있다면, 인도네시아 끝까지 갑니다.(웃음)"
지난 29일 한국과 베트남의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4강전이 열린 인도네시아 보고르 파칸사리스타디움에서 만난 재인도네시아 축구협회(이하 인니 축협) 전용무(55) 회장은 활짝 웃었다. 2011년 출범한 인니 축협은 평소엔 인도네시아 교민들의 친교의 장이다. 가장 큰 행사는 매년 전국체전인데, 선수단을 파견·출전하는 등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자카르타에 사는 전 회장과 회원 5명은 이날 경기(오후 6시)가 시작하기 5시간 전부터 일찌감치 보고르를 찾았다. 어깨에 큼지막한 포대를 하나씩 지고 있던 전 회장과 회원 5명은 "경기장을 찾는 교민들에게 응원용 붉은색 티셔츠와 태극기를 나눠 줘야 한다"며 "쌀가마를 진 것처럼 어깨가 쑤시지만, 교민들의 응원을 보고 힘낼 태극전사들을 생각하면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고 말했다. 김배진(52)씨는 "일찍 나와서 준비해야 한 명이라도 더 응원 도구를 받을 수 있다"며 웃었다. 이들은 이렇게 삼삼오오 김학범호가 치른 전 경기를 동행했다.
인니 축협은 관계자 10여 명은 최근 2주간 발에 불나도록 달렸다. 전 회장을 비롯한 회원 상당수는 김학범호가 자카르타에 입성한 순간부터 반둥(자카르타 기준으로 왕복 150km 거리·조별리그 3경기 장소) 4회 시작으로 보고르(60km·4강전) 치카랑(50km·16강전) 브카시(20km·8강전) 등 모든 경기를 찾았다.
누구의 부탁을 받고 한 것이 아니다. 전 회장은 "누가 시켰다면 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 직장 생활을 하기 때문"이라면서도 "축구를 좋아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민들이 뭉쳐서 근무시간을 조정하고 축구장으로 향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먼저 대표팀에 연락해 필요한 현지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매번 경기 장소로 실어 나르는 물량만도 어마어마하다. 응원용 티셔츠 300~400장, 생수 수십 박스, 태극기·모자 등 각종 응원 도구만 합쳐도 부피가 승합차 4~5대 분량이다. 귄진열(46) 인니 축협 사무총장은 "일할 땐 덥고 힘들지만, 많은 교민들이 경기장을 찾아 가져온 도구가 동나고, 한국이 승리할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 회장을 비롯한 회원 상당수는 인도네시아에 정착한 지 20년이 넘었다. 정착 25년 차인 최문호(58) 고문은 "우리가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 온 과정이 김학범 감독과 선수들의 도전과 닮았다"면서 "친구 같은 감독과 아들뻘 되는 선수들이 타지에서 저렇게 투혼을 발휘하는데, 이곳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으로서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인니 축협은 마지막 출격을 앞두고 있다. 9월 1일 한일전으로 벌어지는 결승전이다. 김남희(45) 인니 축협 이사는 "벌써 대회가 끝나간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 선수들이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응원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