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호산(45)은 최근 2년간 4편의 드라마와 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웬만한 다작 배우들의 활동량을 가뿐히 넘어서는 행보다. 그냥 출연만 한 것이 아니다.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나의 아저씨'·'마더'·'무법 변호사' 등 등장하는 작품마다 좋은 성적을 거뒀다. 명품 조연계의 세대교체를 이룬 셈이다.
지금의 박호산을 만들어준 작품은 2017년 11월 방송된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다. 극중 문래동 카이스트 역으로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캐릭터가 중간 퇴장하자 다음날 포털사이트 댓글창이 뒤집어질 정도였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박호산에게 인기 뿐 아니라 명예도 가져다줬다. 제54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새롭게 신설된 TV부문 조연상을 수상했다. 백상 역사상 첫 TV 조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10여년간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 서고, 마흔살을 넘겨서야 TV와 스크린으로 진출했다. 자신을 21년차 신인배우라고 소개하지만, 알고 보면 연기 장인이다. 인기와 트로피는 하루 아침에 뚝 떨어진 결과물이 아니라 차근차근 쌓아온 땀과 노력의 보상이다.
집 밖에서는 배우 박호산이지만, 집 안에서는 세 아이의 아빠 박호산이다. 그의 둘째 아들인 박준호는 '문래동 카이스트의 아들'로 Mnet '고등래퍼'에 출연, 명성을 얻기 시작해 이제는 진짜 래퍼가 돼 앨범도 발매했다. 아들 이야기에 박호산은 "대견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올해 5살인 막내아들 이야기에는 어김없이 아들 바보가 됐다. 휴대폰에 감춰두고 있었던 막내아들의 노래 영상을 보여주면서 "이러니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냐"며 웃어 보였다. 배우 박호산도, 아빠 박호산도 지금 가장 행복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역할 스펙트럼이 넓어요. "대학로에서 활동할 때부터 그랬어요. 깡패나 서민, 왕이나 거지, 구분없이 다 했어요. 그것이 지금 내 색깔을 쉽게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이어 다른 작품에 빨리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인 것 같아요. 다행히 대학로에서 캐릭터를 빨리 만들 수 있는 숙련이 돼 있었거든요. '나의 아저씨'는 심지어 미리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현장에서 연기하며 캐릭터를 만들어갔어요. 김원석 PD가 원하는 것이 분명하니까 불안하지는 않았지만요. 그러고보면, 김원석 PD와는 또 일하고 싶어요. '아스달 연대기' 왜 안 불러주냐고 투정도 했죠. "
-신원호 PD에 이어 김원석 PD까지, 브라운관 흥행 불패 연출가를 연이어 만났네요. "인복이 있는 것 같아요. 빈말이 아니라, 두 사람은 자타공인 연출가잖아요. 이제 나영석 PD만 만나면 돼네요. 나 PD만 만나면 '이루었도다'. 하하하. 근데 정말 작품복이 많은 것 같아요. 다 시청률이 높아서 포상휴가를 가지 못한 작품이 없었으니까요. 아직까지는 시청률 스트레스를 못 받아봤어요. 하하하."
-나영석 PD와의 만남을 기대하나요. "음…. 배우로서 예능 출연은 다소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너무 상세히 밝혀버리면 작품 속 역할로 봤을 때 몰입이 어려울 수 있으니까요. 작품을 홍보하는 것 정도로는 예능은 선호해요. 아, 그런데 여행 예능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보다는 여행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니까요. 나를 다 보여주지 않아도 될 것 같으니까요. 나PD의 여행 예능을 꼭 집어 말하는 건 아니지만요.(웃음)"
-신원호 PD와 김원석 PD의 연출 스타일은 어떤가요? "두 사람이 참 달라요. 신원호 PD가 유비라면, 김원석 PD는 장비 같아요. 이런 말을 했더니 김원석 PD가 '나도 유비야!'라며 화를 내더라고요.(웃음) 난 이제 관우만 만나면 된다고 생각해요. 하하하. 신원호 PD는 덕장이에요. 다들 신 PD를 좋아해요. 그 사람은 절대 화를 안 내고, 스태프와 배우들의 세세한 것들까지 다 알고 있어요. 현장에서 제일 고생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다들 쉴 때도 밤을 새면서 직접 편집을 해요. 약간의 완벽주의죠. 자기 드라마를 안 찍을 때는 남의 드라마를 엄청 보더라고요. 신 PD와 일하고 싶으면 언제나 열심히 해야 해요. 언제 어디서 어떤 작품의 나를 보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게다가 신원호 PD 팀의 특징은 민주·평등·박애에요. 드라마판이라는 곳이 급하게 돌아가는 상황일 수밖에 없는데 박애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슬기로운 감빵생활' 같은 경우도 이우정 작가팀의 막내가 쓴 거예요. 막내지만 당당히 메인 작가로 이름을 올려줘요. 연기도 마찬가지에요. 배우와 이야기를 나누고 수위도 조절하면서 평등하게 하죠. 모두 신원호 PD를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반면 김원석 PD는 선두에 서서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스타일이에요. 강하게 이끌어가는데, 그 지시가 다 맞아요. 될 때까지 밀어붙이고요. 김원석 PD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 빨리 캐치한다면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기가 한결 쉬워져요. 김원석 PD와 일하며 재밌었어요."
-작품을 보는 눈이 좋은 것 같아요. "난 진짜 신인인가봐요. 내 예상이 항상 뒤집혀요. '슬기로운 감빵생활' 같은 경우에 아무도 해보지 않은 감옥 소재잖아요. 배우들은 다 신인이고요. 대본리딩 하면서 연극 배우들만 앉아있기에 놀랐거든요. 정경호와 크리스탈을 제외하고는 다 대학로 동료들이었어요. 그들과 어려운 작품을 하는 거잖아요. 게다가 내 역할은 혀가 짧고요.(웃음) '이게 진짜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원호 PD도 '되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요'라고 하는 거예요. 하하하. '나의 아저씨'도 대본만 보고서는 '너무 어두운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 작품이 그렇게 감동을 줄 줄이야. 대본을 보면서 얼마나 흥행할지에 대한 감이 전혀 없어요. 작품을 선택하면서 흥행을 고려하는 것은 아니기도 하고요."
-다작보다는 좋은 작품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이죠. "좋은 작품에 대한 욕심이 있어요. 다작에 대한 욕심이 아니에요. 그래도 많은 작품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연극하면서 어려울 때 한 손에 떡을 쥐고 있으면 다른 떡도 맛있게 먹고 싶은 마음으로 살았거든요. 그렇게 안정적으로 다음 작품을 준비해야 안심이 돼요. 그렇다고 아무 떡이나 잡지 않고 맛있는 떡을 잡아야죠. "
-좋은 작품이란 무엇일까요. "깊은 공감이 되는 이야기를 담아야 좋은 작품이죠. 깊게 공감이 되고 보는 이들이 동화가 되기 쉬운 작품이요. 예술 작품은 시대의 거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비춰줄 수 있어야죠. 그냥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들이 치유받거나 속내가 해소돼야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아저씨'가 딱 그런 작품이네요. "누구나 그렇죠. 누구나 가족이 있고 누구나 외로워 봤으니까요. 모두 다 같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괜찮아'라고 하는 거예요. '슬기로운 감빵생활'도 마찬가지죠.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고 같은 아픔을 지녔다는 걸 말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