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은 두 가지 의미를 남겼다. '베이징' 키즈가 한국 야구의 발전과 흥행을 이끌 수 있다는 기대감 그리고 한 수 아래로 평가됐던 대만의 성장세를 확인하며 자리한 위기감이다.
김성용(야탑고) 감독이 이끄는 18세 이하 대표팀은 지난 10일 일본 미야자키 선마린스타디움에서 열린 대만과 대회 결승전에서 7-5로 신승을 거뒀다. 상대의 리드를 허용하지 않는 박빙 흐름이 이어졌다. 승부는 연장 10회 승부치기에서 갈렸다. 내야수 김창평이 1사 만루에서 스퀴즈번트에 성공하며 3-3 균형을 깼다. 이후 대만 투수의 송구 실책을 틈타 추가 2득점을 했고, 1사 뒤 희생 플라이로 점수 차를 벌렸다. 10회 수비에서 추격을 허용했지만 리드를 지켜냈다. 이 대회에서 4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통산 다섯 번째 우승이기도 하다. 내년에 부산시 기장군에서 열리는 세계 대회 전망도 밝혔다.
대표팀을 향한 관심과 응원은 점차 커졌다. 우선 라이벌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일본은 유망주가 다수 대표팀에 선발됐다. 고교 야구가 프로 리그보다 인기가 더 많기에 당연히 국민적 관심이 쏠렸다. 고시엔 대회에서 '무명' 가나아시 농고를 결승에 올려놓으며 드라마 주인공이 된 '무쇠팔' 투수 요시다 고세이가 한국과 예선전 선발로 낙점되자 분위기가 고조됐다.
이 같은 열도의 주인공을 한국 선수들이 침몰시켰다. 1회 주자 2명을 두고 나선 4번 타자 김대한(휘문고)이 요시다를 상대로 스리런홈런을 쳤다. 동성고 에이스인 좌완 김기훈은 5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내며 일본 타선을 압도했다. 사회인 야구선수로 구성된 아시안게임 대표팀과 달리 정상 전력으로 나선 일본팀에 승리한 것이다.
일방적 응원, 한일전 부담감이라는 악재를 극복하고 성숙한 경기력을 보여 줬다. 대만과 결승전에서도 몇 차례 실책은 했지만 빼앗긴 리드를 가져오려는 투지가 돋보였다. 졸전과 병역 논란으로 얼룩진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지켜본 야구팬들은 상대적으로 순수하고 열정 넘치는 야구에 매료됐다. 이번 대회 성과에 유독 큰 박수가 나오는 이유다.
제2의 이정후, 강백호 등장 기대감 업(UP)
KBO 리그도 흥행 요인을 얻었다. 2019시즌에 우승의 주역들을 볼 수 있다. 지난 6월 열린 1차 신인 드래프트에서 선발된 최고 유망주, 9월 10일 열린 2차 드래프트 상위 라운드 지명선수 다수가 대표팀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4번 타자 김대한이 단연 돋보였다. 중국, 일본전에서 결승타를 쳤다. 결승전에서도 0-1로 뒤진 2회초 첫 타석에서 우월 솔로포를 쏘아 올렸다. 빠른공을 밀어서 담장을 넘겼다. 나이를 감안하면 놀라운 힘이었다. 대만 더그아웃은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4회 두 번째 타석에서 주력도 선보였다. 전력 질주해 상대 실책을 유발했고 걸어서 2루 베이스를 밟는 도루 센스도 보여 줬다. 수비 능력도 뛰어났다. 중견수로 나선 그는 우측에 치우친 안타성 타구를 정확한 판단과 안정감 있는 포구로 처리했다.
두산이 1차 지명으로 품은 선수다. 강백호(kt)처럼 투타 겸업이 가능한 선수로 알려졌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일단 투수로 활용할 심중을 전했다. 이번 대회에서 보여 준 능력을 감안하면 행복한 고민이 이어질 전망이다.
제일고 출신의 내야수 김창평(전체 6위)과 경남고 노시환(전체 3위)은 결승전이 열린 날, 1라운드에 지명되는 영광을 안았다. 각각 SK와 한화에 입단했다. 현장에서 발산하지 못한 기쁨을 타국에서 경기가 끝난 뒤 풀어냈다.
두 선수도 인상적인 장면을 남겼다. 수비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에 팀 승리에 기여했다. 김창평은 승부가 갈린 연장 10회 스퀴즈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절묘한 코스와 빠른 발을 앞세워 내야 안타도 만들어 냈다. 한국의 일곱 번째 득점까지 올렸다. 이 대회 최우수선수와 타점·득점상을 거머쥐었다. 노시환은 연장 10회말 무사 만루에서 3루 방면으로 향한 강습 타구를 잡아 처리하며 꼭 필요한 아웃 카운트 확보에 기여했다. 포구와 송구 모두 뛰어났다. 대회 타율은 0.692. 타격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마운드에선 롯데의 1차 지명투수 서준원(경남고) 삼성 1차 지명 원태인(경북고)이 돋보였다. 결승전에서 두 번째 투수로 나선 원태인은 영점이 잡힌 뒤 빠른 구속을 홈 플레이트 가장자리에 꽂았다. 공끝의 움직임도 좋았다. 서준원은 '핵잠수함' 별명이 붙을 전망이다. 우완 옆구리 투수인 그는 최고 구속 시속 151km를 찍었다. 투구 자세와 궤적 모두 위압감을 준다. 사이드에서 언더핸드로 던지는 변칙까지 선보이며 흥미를 자아냈다.
2차 드래프트 3라운드에 롯데의 선택을 받은 김현수(장충고)도 기여도가 높았다. 몸 쪽 공을 밀어 쳐 우측으로 보내는 능력이 돋보였다. 프로에선 투수로 활용될 전망이다. 이 대회에서 뛰어난 운동 능력을 보여 줬다. 박빙 상황에서 리드를 지켜 낸 김기훈도 KIA의 1차 지명선수다. 빠른공을 던지는 좌완 투수다. 체격과 인상처럼 다부진 투구를 보여 준 야탑고 2학년 안인산은 1년 선배들에게 밀리지 않았다. 마치 강백호를 연상시킨다. 결승전에 선발 등판한 덕수고 2학년 좌완 투수 정구범도 성장이 기대된다.
KBO 리그는 2년 연속 대형 신인이 등장했다. 지난해 신인 선수 최다 안타와 득점을 다시 쓴 이정후는 올해는 타격왕 후보다. 올 시즌 신인왕을 예약한 강백호는 홈런 기록을 다시 쓰려고 한다. 포스트 이승엽 시대에 스타 탄생은 매우 절실하다. 베이징 키즈의 등장과 성장이 이를 해소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대회를 통해 예비 스타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릴 수 있었다. 대만 야구의 성장세, 격차는 줄었다
청소년 대표팀 간 수준 차이는 애초에 크지 않았다. 대만은 예선에서 일본에 3-1로 승리했다. 우연이 아니었다. 한국과 결승전에서도 수차례 승기를 잡았다. 무엇보다 자질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다. 선발투수로 나선 첸슌리는 190cm가 넘는 큰 키로 내리꽂는 빠른공의 구위가 돋보였다. 홈 플레이트 앞에서 가라앉는 체인지업도 좋다. 김대한에게 맞은 홈런을 제외하면 피안타도 없었다.
두 번째 투수로 나선 좌완 진유창도 빠른공을 던졌다. 주 무기인 스플리터는 한국 타자의 연속 헛스윙을 유도했다. 낙폭과 꺾이는 타이밍이 모두 좋다. 네 번째 투수로 나선 우완 투수 위타린의 구위는 이날 등판한 대만 투수 가운데 단연 최고였다. 그는 4번 타자도 소화했다. 승부를 가르는 치명적인 실책은 했지만 구위는 한국 타선을 제압했다. 6회 3-2로 앞서는 적시타를 친 치우치쳉의 스윙, 9회초 안타성 타구를 잡아낸 유격수 쿤유치앙이 플레이에서 탄탄한 기본기가 확인됐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첫 경기인 대만전에서 2-1로 패했다. 부담감 탓이 아니다. 상대의 전략과 마운드 전력이 모두 좋았다. 한국은 2017년 3월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대만에 간신히 이겼다. '복병'으로 여길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물론 프로 리그의 규모와 수준은 젊은 선수들의 성장 방향과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유망주들이 수년 뒤 더 좋은 기량을 갖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뛰어난 자질을 갖춘 대만 선수들이 해외 진출을 통해 경험을 쌓고 그들을 중심으로 대표팀이 구성된다면 국가 대항전에서 향방은 가늠하기 어렵다. 어느새 대만이 등 뒤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