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과 11일, 고양과 수원에서 열린 A매치 평가전에는 실로 오랜만에 만원 관중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붉은 옷에 머리띠, 머플러까지 두른 팬들이 목소리를 높여 "대~한민국!"을 외치는 풍경은 근래 들어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무려 12년 만에 기록한 A매치 2경기 연속 매진 사례는 한국 축구의 부흥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의 평가전 현장을 찾은 몇몇 축구인들이 하나같이 '2002 한일월드컵'을 떠올리는 까닭이다.
파울루 벤투(49·포르투갈)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이 9월 A매치 평가전 일정을 1승1무로 마무리 짓고 해산했다. 벤투호는 이번 평가전 2연전에서 벤투 감독의 사령탑 데뷔전 승리 그리고 남미의 강호 칠레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두는 좋은 성적을 냈다. 하지만 좋은 성적 이상으로 주목받은 부분은 따로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 국가대표'의 인기였다. 고양과 수원 경기를 연달아 매진시킨 벤투호의 인기는 엄청났다. A매치가 두 경기 연속 매진된 것은 2006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그해 5월 23일 열린 세네갈전 그리고 5월 26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전 이후 12년 4개월여 만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표팀은 쏟아지는 비난 속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2014 브라질월드컵의 좌절과 울리 슈틸리케(64) 감독의 실패 그리고 2018 러시아월드컵 초반 2경기의 부진 등으로 한국 축구는 동네북처럼 두들겨 맞았다. 그러나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독일을 2-0으로 격파하며 반전의 계기를 만든 대표팀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금메달로 흥행의 불씨를 지폈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이 금의환향하던 3일 인천공항에는 무려 1000여 명의 축구팬이 몰려들었고 A매치 기간 동안 파주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열린 오픈트레이닝데이 행사에는 대한축구협회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1100여 명의 인파가 운집하면서 뒤늦게 대기표를 발급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서 활약한 손흥민(26·토트넘) 이승우(20·헬라스 베로나) 등 스타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팬층이 여중생과 여고생들로 크게 확대된 점이 눈에 띄었다.
한 번 타오른 축구 흥행의 불씨를 이어받을 주자는 당연히 K리그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A매치 기간이 끝난 상황에서 이 열기를 주말에 열리는 K리그로 이어 가고자 노력 중이다. 김진형 프로축구연맹 홍보팀장은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승리, 벤투호의 선전 등과 맞물려 한국 축구가 오랜만에 호기를 맞았다"며 "축구 열기를 K리그로 가져올 수 있는 여러 방안에 골몰하고 있다. 구단 차원의 공세적 마케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2002 한일월드컵 때도 'CU@K리그'라는 슬로건과 함께 월드컵 열기를 K리그로 이어 가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 당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한일월드컵 때 스타덤에 올랐던 '히딩크호' 선수 대부분이 K리그 소속 선수들이었던 덕에 전년 대비 관중 수가 30% 이상 급증하는 효과를 낳았다. 그러나 '월드컵 특수'는 잠깐이었고 이내 관중 수가 다시 줄어들었다. 2002년의 성과도 '반짝 인기'에 그친 셈이다.
16년 만에 어렵게 다시 찾아온 기회인 만큼 연맹과 프로축구 구단들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다. 각 구단은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활약한 선수들을 주축으로 적극적 마케팅을 펼치고 있으며, 연맹도 '동해안 더비'의 미디어데이 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하는 등 '축구의 봄'을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침체 일로에 빠져 있던 한국 축구를 살리기 위한 절호의 기회"라면서도 "막연히 국가대표 인기에 기댈 것이 아니라 팬들의 니즈를 반영한 적극적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