쓱쓱 그림을 그리고 "참 쉽죠?" 라고 말하던 '밥 아저씨' 화가 밥 로스처럼, 신들린 가위질을 선보이며 "참 쉽죠?"라고 말하던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처럼. 전문가에게는 참 쉽지만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한없이 어려운 분야가 있다. 요리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무엇보다 요리는 복잡한 준비 과정이 뒤따른다. 신선한 재료를 사기 위해 미리 장을 봐야 하고, 소금이나 식용유 등 기본적인 재료가 항상 구비돼 있어야 한다. 한 번 요리하기 위해 많은 분량의 재료를 사는 것도 번거롭다. 남은 재료를 냉장고에 뒀다가 오래돼서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최근 이 같은 소비자들의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밀키트(간편 요리 세트)'다. 한 번 요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재료를 담아 패키지로 배송해 주는 제품이다. 여기에는 고기와 야채 등 식자재뿐 아니라 소스까지 포함돼 있다. 레시피(요리 방법)도 들어 있다. 한국야쿠르트의 간편식 브랜드 '잇츠온'이 그 대표적인 예다. 잇츠온은 지난해 9월부터 차돌박이 순두부찌개를 비롯해 서울식 소불고기·떡볶이·치킨 케사디야·비프 촙스테이크 등 20여 종의 밀키트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정말 편리하고 맛있을까. 밀키트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기자가 직접 요리해 봤다.
"손질된 재료… 딱 맞는 양의 양념" 밀키트는 원하는 시간에 집으로 요리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재료를 배달해 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잇츠온 사이트에 접속해 원하는 제품과 배송 날짜를 선택하면 된다.
기자는 지난 5일 저녁을 위해 2일 오후 10시 '비프 촙스테이크'와 '차돌박이 순두부찌개'를 주문했다.
'띵동', 제품을 받기로 한 당일 오전 9시. 요리 상자가 배달 왔다. 야쿠르트 아줌마가 직접 네모난 상자를 전달해 줬다.
상자를 열어 보니 요리하는 데 필요한 갖은 재료들이 냉장 식품 형태로 레시피 카드와 함께 딱 필요한 만큼 손질돼 들어 있었다.
유통기한은 예상보다 짧았다. 3일 정도다. 요리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유통기한을 최소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국야쿠르트 측의 설명이다.
먼저 '비프 촙스테이크(1만8900원·2~3인분)'에 도전했다. 잇츠온 밀키트 중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이다.
만드는 법은 간단했다. 레시피에 나온 순서대로 따라 하면 됐다.
포장을 열면 소고기를 비롯해 양파·피망·마늘·소스 등 식자재가 각각 따로 포장돼 있다.
따라서 주방에 있는 어떤 재료도 꺼낼 필요가 없다. 요리할 팬과 담을 그릇만 있으면 된다.
포장된 소고기를 꺼내 허브 솔트를 뿌리고 올리브오일을 발라 10분간 숙성해 준다. 팬에 숙성된 소고기를 넣고 강불에 볶아 준다.
이어 갖은 야채를 넣고 소스를 부어 볶으면 요리가 완성된다. 고기를 숙성하는 시간을 빼면 요리하는 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요리하는 방법은 라면을 끓이는 것 못지않게 간단했다.
다만 집에 가득 퍼지는 연기는 주방 환풍기를 가장 세게 틀었지만 막지 못했다.
완성된 음식의 겉모습은 그럴 듯했다. 내가 만들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맛도 예상보다 좋았다. 양념의 양도 적당했다.
이어 '차돌박이 순두부찌개(1만5900원·2~3인분)'를 만들어 봤다. 요리하는 방법은 촙스테이크보다 쉽다. 배달된 재료를 순서대로 볶아 주다가 적당량의 물을 넣고 끓이기만 하면 완성된다. 요리를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8분. 맛은 예상보다 좋았다. 여느 음식점 못지않았다. 뽀얗고 담백한 순두부 맛이 일품이었다.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두 가지 요리를 직접 만들면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짧은 요리 시간과 남는 재료가 없다는 점이다. 뒤처리도 쉬웠다. 종이와 비닐 포장을 분리수거해 버리면 끝이다. 특히 양념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아내에게 일일이 물어보지 않아도 돼 편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기자의 요리 도전을 지켜보던 아내는 "요리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장을 보지 않고 간단히 만든 요리치고는 맛이 훌륭하다"며 "매주 주말에 이렇게 요리해 주면 좋겠다"며 웃었다.
1인 가구 증가로 수요 급증… 업체들 경쟁 '후끈' 간단한 조리법에 장보기의 번거로움마저 없앤 '밀키트'에 대한 고객의 반응은 뜨겁다.
한국야쿠르트는 지난해 7월 간편식 브랜드 '잇츠온'을 론칭하고 그해 9월 밀키트 제품을 선보였다. 출시한 지 1년이 지난 현재 밀키트 제품의 누적 매출은 70억원을 넘어섰다. 잇츠온 전체 누적 매출(200억원)의 35%에 해당한다.
매출과 함께 눈길을 끄는 부분은 '정기 배송' 비율이다. 정기 배송은 한 달 치 식단을 집으로 배달받는 서비스다. 잇츠온 밀키트 제품의 주문별 매출 비중은 단품 주문이 40%, 정기 배송이 60%다.
한국야쿠르트 관계자는 "1만3000여 명의 야쿠르트 아줌마 유통망을 바탕으로 고객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밀키트 제품을 받을 수 있게 한 결과, 정기 배송 비율이 늘고 있다"며 "여기에 이용의 편리성과 할인 혜택 등 장점까지 더해지면서 정기 배송 주문 비율은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국야쿠르트의 밀키트 제품이 인기를 끌자, 경쟁 업체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동원홈푸드는 '더반찬'을, GS리테일과 NS몰은 각각 '심플리 쿡'과 '10분 레시피'를 내놨다. 프렙·테이스트샵·배민프레시·마이셰프·헬로네이처 등도 밀키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대백화점은 밀키트의 고급화에 나서고 있다. 올해 4월 서울 강남 유명 레스토랑 그랑씨엘의 이송희 셰프와 손잡고 프리미엄 밀키트 '셰프 박스'를 선보였다.
대표 제품은 현대백화점의 고급 전통 식품 브랜드 '명인명촌'의 유기농 매실액을 쓴 차돌박이 겉절이, 부산 기장 다시마와 셰프의 소스가 만난 양념장어덮밥 등이다.
가격은 다른 밀키트보다 5~10% 비싸지만 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한다는 전략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밀키트는 신선하고 건강한 가정식을 찾는 소비자의 요구에 가장 잘 부합하는 간편식"이라며 "조리되기 전의 식자재 상태를 직접 볼 수 있고 요리법이 간단해 수요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