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호 2기가 발표됐고, 우루과이(2-1 승) 파나마(2-2 무) 2연전을 마쳤다. 이 2경기에서 이승우는 단 1분도 출전하지 못했다. 대기 명단에만 머물다가 끝났다. 벤투호 2기에 소집된 유럽파 중 유일하게 그라운드를 밟지 못한 선수가 이승우다. 벤투호 2기 유럽파는 손흥민(토트넘) 기성용(뉴캐슬) 황희찬(함부르크) 석현준(랭스) 그리고 이승우까지 5명이다. 이재성(홀슈타인 킬)은 소집됐지만 무릎 통증으로 조기 퇴소했다. 손흥민·기성용·황희찬·석현준은 저마다 색깔 있는 모습을 드러내며 벤투 감독의 눈도장을 찍었다. 한국 축구의 좋은 흐름에도 큰 역할을 했다. 이승우만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코스타리카·칠레와 2연전을 치른 벤투호 1기를 포함하더라도 이승우는 유럽파 중 가장 적은 출전 시간을 부여받았다. 벤투호 1기에는 또 다른 유럽파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이 포함돼 있었다. 이승우는 코스타리카전에서 후반 38분 손흥민과 교체 투입됐고, 7분간 뛰었다. 벤투호가 4경기를 치르는 동안 이승우가 경기에 출전한 시간은 총 7분이다. 이후 3경기에 모두 결장했다. 벤투호에 합류한 유럽파 중 선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 유일한 선수도 이승우다. 아시아도 아니고 유럽과 한국을 오가는 장거리 이동 속에서 1분도 뛸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이승우는 현재 대표팀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리는 선수 중 하나다. 대표팀의 '아이돌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톡톡 튀는 개성을 앞세운 이승우는 젊은 여성팬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벤투호가 출범한 뒤 4경기 연속 매진 행렬을 기록한 것 역시 이승우의 존재감이 컸다. 전광판에 이승우가 비치기만 해도 여성팬들의 환호와 함성이 터진 것을 보면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인기가 대표팀에서의 선발을 보장하지 않았다. 많은 팬들이 이승우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경기장에 왔지만 이승우는 끝내 출전하지 못했다.
이승우는 대표팀 백넘버 10번을 달고 있다. 벤투호 1기와 2기 모두 10번을 부여받았다. 축구팀에서 10번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일반적으로 '에이스'를 뜻하는 번호, 팀의 얼굴이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고의 선수 리오넬 메시가 바르셀로나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10번을 달고 뛴다. 이승우에게 10번이 달린 것은 그만큼 상징성과 기대감을 내포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벤투호에서는 소용없었다. 10번이라는 백넘버도 선발을 보장하지 않았다. 이승우는 10번을 받았지만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형국이다. 현재 대표팀의 10번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이유다.
유럽파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백넘버 10번까지 달았지만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현상. 벤투 감독의 냉정한 판단이 만들어 낸 현상이다.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유럽파면 무조건 주전으로 뛰었던 '유럽파 프리미엄'은 사라졌다. 인기와 10번의 상징성 역시 벤투 감독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벤투 감독은 오롯이 선수의 경쟁력만으로 판단했다.
간단히 말해 이승우는 대표팀 주전 경쟁에서 철저히 밀리고 있는 것이다. 이승우와 겹치는 공격 포지션에 경쟁자들이 이승우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손흥민을 비롯해 황희찬과 이재성 등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유럽파는 물론이고 중동파 남태희(알 두하일)와 K리거 문선민(인천 유나이티드)도 이승우보다 많은 출전 시간을 받았다.
이승우가 소속팀 베로나에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것과 상관없다. 이 요소는 주전 경쟁에 적용되지 않았다. 벤투 감독은 "소속팀에 출전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경기에 투입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기성용 역시 최근 뉴캐슬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벤투 감독의 시선은 단순하고 간결하다. 굳이 다른 이유를 댈 필요가 없다. 포지션 경쟁자들과 비교해 이승우의 강점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이승우를 경기에 내보낼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벤투 감독은 "다른 선수가 뛰어서 이승우가 나오지 못했다. 단순히 그 포지션에 상당히 능력이 좋은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현상을 바꿀 수 있는 이는 이승우 본인뿐이다. 자신을 향한 팬들의 큰 지지와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서 성장해야 하고, 벤투 감독의 눈에 들어야 하며, 경쟁자들을 뛰어넘어야 한다. 벤투 감독은 소속팀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지금 이승우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일은 소속팀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잡는 것이다. 그래야 보여 줄 것이 있고, 성장한 것을 증명할 수 있다. 그다음 벤투 감독에게 어필하고, 주전으로 올라서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오는 11월 A매치에 이승우가 출전할 가능성은 낮다.
이승우 역시 잘 알고 있는 부분이다. 그는 "경기에서 뛰지 못해 당연히 개인적으로 아쉽다. 하지만 권한은 감독님에게 있는 것"이라며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기 위해 더 성장하고 발전해야 하는 시기다. 노력하고 발전하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의지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