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권은 자타가 공인하는 '가을 남자'다. 포스트시즌(PS) 무대만 서면 독보적인 활약을 보여준다. PS 통산 타율이 0.321(162타수 52안타)다. 기록한 안타 52개 중 장타가 약 46%인 24개(2루타 14개 홈런 10개)다.
시리즈 MVP만 세 차례 수상했다. 2009년과 2011년 플레이오프(PO)와 2010년 한국시리즈(KS)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역대 SK 선수 중 최다다. 그리고 27일 열린 넥센과의 PO 1차전에선 8-8로 팽팽하게 맞선 9회 끝내기 2점 홈런을 때려 경기 MVP로 선정됐다. 대타로 출전해 두 번째 타석에서 드라마틱한 장타를 뽑아냈다. 이 홈런으로 박정권은 이승엽(전 삼성)과 홍성흔(전 두산)을 제치고 KBO 역대 PO 최다 홈런 기록(7개) 보유자가 됐다.
박정권이 말하는 '가을'에 강한 이유는 간결하다. 그는 "남들보다 그냥 좀 재밌다. 몇 경기 못하면 끝날 수 있는데 즐겨야 하지 않나. 정규시즌처럼 내일이나 다음 주가 있는 경기가 아니다. 최대한 즐기려고 한다. 그냥 야구장에 나와 있는 것 자체가 재밌고 좋다"고 말했다. 부담을 내려놓고 경기에 집중한다. 물론 쉬운 건 아니다.
올해 성적이 바닥이다. 정규시즌 14경기에 나와 타율이 0.172(29타수 5안타)에 그쳤다. 출루율(0.226)과 장타율(0.379)을 합한 OPS가 0.605에 불과했다. 한동민과 김동엽 등 성장을 거듭한 젊은 거포에 자리가 밀렸다. PO 엔트리 승선 여부가 미지수였다. 박정권은 "최대한 놓지 않으려고 나를 계속 붙잡았다. 계속 참다보니 엔트리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어렵게 선 PO 무대.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갈 수 있지만 박정권은 달랐다.
1차전 결승 끝내기 홈런을 치는 상황이 딱 그랬다. 그는 "(1사 1루에서) 홈런이나 안타를 치기보다는 1루와 2루 사이 공간이 많이 있어서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를 갖다 놓자는 생각으로 가볍게 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일종의 '무심(無心) 타법'이다. 후배들에게 전하는 조언도 비슷하다.
박정권은 "단기전은 중요한 경기라 불필요하게 힘이 많이 들어가게 된다. 정규시즌 때는 자가진단이 가능한데 본인이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포스트시즌처럼 사람이 많고 그러면 멍하고 자기가 어떤 플레이를 하는지 모른다. 한 템포 쉬어가면서 평소보다 천천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 평소 하던 자기 스윙의 반의반만 돌려도 된다. 힘을 빼고 즐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큰 경기일수록 즐기면서 힘을 빼는 것. '가을 남자' 박정권이 말하는 PS에 강한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