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컬링대표팀은 은메달을 땄다. 스킵 김은정(28)이 김영미(27)를 향해 외친 “영미~!”는 전 국민의 유행어가 됐고, 세계 주요 언론은 ‘불모지’ 한국의 컬링 열풍을 대서특필했다.
8개월이 흐른 지금 한국 컬링의 신화는 ‘잔혹 동화’가 돼버렸다. 특히 한국 컬링을 총괄하는 대한컬링경기연맹은 난파선 신세다. 컬링연맹은 지난해 8월 파행 운영으로 관리단체로 지정돼 자체 행정 기능을 상실했다. 1년 2개월이 흐른 지금도 관리단체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컬링연맹 회장은 1년 4개월째 공석이다.
설상가상으로 후원사였던 신세계는 지난 4일 컬링연맹과 후원 계약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신세계그룹은 평창올림픽을 목표로 2012년 대한컬링연맹과 후원계약을 맺으면서 그동안 약 100억원을 지원했다. 신세계그룹은 한국 컬링 저변 확대와 기량 향상을 위해 그동안 최선을 다했다며 예정대로 올해를 끝으로 후원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체육계에서는 “신세계가 내홍과 잡음이 끊이지 않는 컬링연맹에 대한 지원을 끊는 건 당연한 결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세계가 지원한 100억 원은 그동안 운영비·전국대회 상금 및 개최비용 등으로 쓰였지만 상세한 사용 내역은 공개되지 않았다.
회장도 없고 지원까지 줄어든 컬링연맹은 국제 대회에 선수를 파견하는 데도 애를 먹고 있다. 컬링연맹은 당초 지난달 중국에서 열린 월드컵 1차전에 2018~19시즌 국가대표 선발전 여자부 1위를 보내고, 12월 미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2차전에 국가대표 선발전 2위를 한 팀을 우선 선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컬링연맹은 “후원사 계약 만료로 자금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면서 “월드컵 2차전에도 대표선발 1위 팀인 춘천시청을 내보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표선발전 2위 팀은 평창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경북체육회(팀킴)다. 그동안 ‘팀킴’은 컬링연맹과 의견 차이로 갈등을 빚어왔다.
컬링연맹은 또 지난 22일 캐나다 캘로나에서 끝난 2018 세계믹스컬링선수권대회에 한국 팀을 출전시키지 않았다. 컬링연맹 홈페이지에는 이 대회에 관한 정보는 아예 없다.
지난 8월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 일정과 방식도 논란이 됐다. 일정은 수시로 바뀌었고, 불과 2~3주 전에 최종 확정됐다. 경북체육회는 결승에 올라가기 전까지 7전 전승을 거뒀지만, 결승 단판에서 춘천시청에 딱 한 번 패해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컬링연맹은 김경두(62) 전 컬링연맹 회장 직무대행과 법정 다툼 중이다. 김 전 직무대행은 경북체육회 컬링팀의 멘토이며, 지난해 6월 컬링연맹 공석 사태가 발생하자 직무대행을 맡았다.
하지만 ‘60일 이내’에 연맹 회장선거를 시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 6월 컬링연맹으로부터 1년 6개월 자격 정지의 중징계를 받았다. 김 전 직무대행은 지난달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 훈련에 집중해야 했다”면서 징계가 부당하다고 컬링연맹을 상대로 가처분신청을 냈다. 컬링연맹도 법적 대응 중이다.
컬링연맹은 60일 이내에 새 회장을 안 뽑았다면서 김 전 직무대행에게 중징계를 내렸는데 정작 관리위원회는 1년 4개월째 회장 선거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 현재 관리위원장은 컬링인이 아닌 예비역 장성이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