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이 경제효과를 넘어 역사 교육 확산이라는 역대급 파급력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방송국 TV 아사히의 음악방송 출연 취소 여파가 역설적으로 과거- 현재의 한일 관계를 돌아보게 했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10일 오후 돔 투어를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당초 지난 8일 오후 출국할 예정이었으나, 일본 인기 음악방송 TV 아사히 '뮤직스테이션'이 9일 예정된 생방송 전날 출연 취소를 통보해 이틀 더 한국에 머물렀다. 이유에 대해 TV 아사히는 "'이전에 멤버가 착용했던 티셔츠 디자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고 일부에서 보도했다. 소속사와 착용 의도를 묻는 등 협의를 했으며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이번 출연을 보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문제 삼은 티셔츠는 지난해 한 방송에서 지민이 입은 것으로, 광복절 기념 디자인이 들어가 있다. 원자폭탄 투하 장면과 사람들이 광복을 맞아 만세를 부르는 모습이 있다. 영어로 '애국심' '우리 역사' '해방' 등이 적혀 있다. 티셔츠를 디자인한 LJ컴퍼니 이광재 대표는 "반일 감정과 일본에 대한 보복을 위해 만든 디자인이 아니었다"면서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인해 광복이 왔다는 역사적인 사실과 순서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어게인 2012년? 방탄소년단은 이번 방송뿐 아니라 연말까지 일본 방송국 출입이 어렵게 됐다. 후지TV 'FNS가요제'는 출연을 타진했다가 철회했고 TV아사히 '뮤직스테이션 슈퍼라이브'는 출연 검토를 백지화 했다. 많은 한류스타가 다녀간 현지 연말 최대쇼 NHK '홍백가합전'도 출연 보류 상태다. 일본의 이같은 보복 조치는 과거에도 있었다. 2011년엔 김태희 주연의 일본 드라마 '나와 스타의 99일' 반대 시위가 열렸다. 김태희가 2005년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티셔츠를 입고 독도사랑 캠페인을 펼쳤다는 이유였다. 2012년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본 천왕의 사과 요구 공개 발언 등으로 한일관계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반한 감정이 격해지며 한류 스타들의 현지 행사가 취소됐고 K팝 가수 섭외가 줄어들었으며, 일본 지상파에선 국내 드라마 방영을 중단했다. '홍백가합전'은 그로부터 2016년까지 한국 가수 출연을 배제해왔다. 하지만 K팝의 인기가 점점 커지면서 지난해엔 트와이스가 4년 공백을 깨고 출연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현지 에이전시 측은 "그때만큼 반한 움직임이 격하지 않으나, 연말까지는 지켜봐야 한다. 올해 K팝 인기가 극대화되면서 여러 행사들이 이미 잡혀있는 것이 많고, 양국 엔터사업 협업 규모도 커진 상황이라 일본 방송 출연 금지 사태가 더욱 커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본 내에서도 엇갈린 반응 현지에서도 방탄소년단의 급작스런 '뮤직스테이션' 취소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온라인 사이트 성향마다 댓글 반응은 옹호부터 반박까지 다양하다. 우익 성향 매체들은 지민의 티셔츠를 '원폭 티셔츠'라고 칭했고 대표 우익매체 도쿄스포츠는 "너무나도 비상식적이다. 한국 인기 그룹 방탄소년단의 반일 활동이 한국에서 칭찬받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그룹이 원폭 사진이 프린팅 된 티셔츠를 입고 일본인의 신경을 건드린다. 자국 역사에 대한 뿌리 깊은 콤플렉스가 나타난다"고 일방적 비난 기사를 수록했다. 의사 겸 방송인 카츠야 타카스는 "이를 방치한 한국 정부가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반면 일본의 일부 아미(팬클럽)들은 방탄소년단에 사과하며 "제대로 뉴스를 보도하라"고 자국 매체를 지적하기도 했다. 또 SNS를 통해 "#LiberationTshirtNotBombTshirt(원폭티셔츠 아닌 광복 티셔츠)" "#RealReasonWhyJPNTVcancelled(일본 방송국이 취소한 진짜 이유)"라는 역사 의삭 바로잡기 해시태그 캠페인에 동참했고 "일본이 원자폭탄으로 많은 희생자를 안았지만, 한국은 수년 간의 일제강점기로 더 큰 희생을 당했다"는 내용을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 등 각국 언어로 번역해 공유했다. 현지 일부 매체는 이번 방탄소년단의 출연 취소는 넷우익들의 단체 행동으로 벌어진 일이라 분석했다.
영국과 미국 등 전세계 매체들에도 이번 사태를 집중 조명했다. 음악전문 매체 빌보드는 방탄소년단의 일본 방송 출연에 대해 발빠르게 보도했고, 미국의 CNN은 "일제강점기, 세계 2차 대전 당시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로 벌어진 일"이라며 "한국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에게 지배당했고 2차 세계대전 동맹군이 일본에 폭탄을 투하해 해방됐다. 수백만의 한국인은 일본의 점령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이들에 대한 치유 문제가 한일 관계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상세히 보도했다. 또한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 폭탄 투하로 20만 명 이상이 사망해 역시 이 문제에 민감하다"며 양측 입장을 적었다. 영국의 BBC는 지민의 티셔츠 문구와 이에 대한 네티즌 반응을 다뤘다. 한국홍보전문가로 활동 중인 서경덕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는 "일본이 방탄소년단의 방송 출연을 막고, 극우 매체에서 이런 상황을 보도하는 것은 그야말로 '최악의 자충수'를 두고 있다고 본다. CNN, BBC 등 세계적인 언론에 이번 상황이 다 보도되면서, 오히려 전 세계의 젊은 팬들에게 '일본은 전범국'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각인 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동참 방탄소년단으로선 당장의 일본 스케줄 취소가 아쉬울리 없다. 꽉 들어찬 글로벌 스케줄로 바쁜 행보를 걸어오고 있으며, 일본 돔투어는 38만 석이 매진돼 암표 시장에서도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오히려 취소 논란을 일으킨 일본이 역풍을 맞고 있는 상황이다. 한일관계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증폭되면서 관련 구글 검색량도 치솟았다. 미국 구글 페이지에 'Why'만 입력해도 BTS가 자동으로 완성되며, 연관 검색어로는 'Why did japan invaded korea?'(왜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는가)가 올라 있어 방송 취소에 대한 궁금증이 역사적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도 이번 일본의 보복성 조치에 목소리를 높였다.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확정 판결을 내린 결정에 반발하며 방탄소년단을 통한 문화계 보복을 행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방탄소년단의 방송 출연을 취소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고 부적절한 일이다. 민간 교류에 자꾸 정치적 잣대를 갖다대는 것은 한일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일본은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위해 보다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일본의 자기중심적인 역사인식과 편협한 문화 상대주의에 대해 깊은 안타까움을 표한다. 일본 정부는 방송 장악을 통한 한류 죽이기는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될 뿐이라는 것을 명심하라"며 "멤버 중 한 명이 입은 티셔츠 만으로 출연을 취소했다는 것은 일본의 문화적 저급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논평했다. 바른미래당 김정화 대변인은 "일본의 몰염치가 끝이 없다. 적반하장도 지나치다"고 했으며, 민주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 역시 "일본이 전범국가임을 전세계에 더욱 홍보하는 일일 뿐이다. 일본은 편협한 과거 감추기에서 벗어나라"고 밝혔다.
방탄소년단은 이번 사태와 무관하게 현지 인기를 자랑 중이다. 지난 7일 아홉 번째 싱글 '페이크 러브/에어플레인 파트.2' 발매 직후 오리콘 데일리 싱글차트 1위에 올랐으며 현지 굿즈도 불티나게 팔리는 중이다. 13일, 14일 도쿄돔을 시작으로 21일·23~24일 오사카 교세라돔, 내년 1월 12~13일 나고야돔, 2월 16~17일 후쿠오카 야후오쿠돔까지 '러브 유어셀프' 투어를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