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차붐’을 알고 기억하는 시대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당신 차범근 아니냐’고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을 때 좋은 일 열심히 하고, 또 어떻게든 마무리 지어 보고 싶습니다. 그 뒤엔? (차)두리가, (박)지성이가, (구)자철이와 (기)성용이가 각자의 방식으로 이어갈 거라 기대합니다.”
어느덧 70대로 향하는 나이지만, 차범근(65)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여전히 ‘내일’을 생각한다. 15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차 감독은 “나이가 있어 그런지 내가 ‘일하고 싶다’고 말하면 높은 자리나 정치 욕심내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며 “이제껏 내가 해왔고 앞으로도 할 일은 오직 하나, 한국 축구가 더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분위기를 바꾸고 새 물결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에도, 지금도 차 감독 관심은 오직 하나, 유소년 축구다. 1989년 독일에서 현역 생활을 접고 귀국을 준비하며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상과 축구교실부터 시작했던 ‘초심’은 여전히 그대로다. 차 감독은 “많은 사람이 독일에서 내가 승승장구했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하루하루가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분데스리가에는 ‘아시아 최고’라는 타이틀이 초라하게 느껴질 만큼 뛰어난 선수가 많았다”며 “내가 느낀 그 고통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방법은 단 하나, 기본기를 열심히 가르치는 것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최근에는 시야를 넓혔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축구 동반성장’의 큰 그림을 그린다. 한국 유망주를 독일에 데려가 선진축구를 경험하게 해주는 ‘팀 차붐(Team Chaboom) 프로젝트’에 ‘플러스’를 얹었다. ‘팀 차붐 플러스’라는 간판으로 아시아 전역의 유망주까지 기회의 문을 넓혔다.
첫 삽은 중국에서 떴다. 지난 7월 중국 국영기업 시틱(CITIC) 그룹 산하 ‘중정문화체육발전관리유한공사(이하 중정문체)’와 손잡고 중국 선전에서 유망주 발굴에 나섰다. 조만간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네팔 등 아시아 곳곳으로 영역을 넓힐 예정이다.
차 감독은 “중국 축구는 근래에 많은 돈을 쓰지만 걸맞은 효과를 내지 못한다”며 “결국 무엇에 어떻게 투자하는지가 관건이다. 팀 차붐 플러스는 함께 하는 축구인들이 객관적으로 선수를 선발한 뒤 유럽 연수를 통해 목표 의식을 세워주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팀 차붐 플러스 프로젝트의 중요한 지향점 중 하나는 북한 축구를 향해 굳게 닫힌 빗장도 함께 여는 일이다. 차 감독은 지난 9월 남북 정상이 평양과 백두산에서 손을 맞잡을 때 특별 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했다. 북한과 유소년 축구 교류 가능성에 대해 눈을 떴다.
차 감독은 “국제 정세를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북한 축구 유망주에 관해 관심을 갖고 있다”며 “북한 대표선수 출신인 재일동포 안영학, 북한대표팀 감독을 지낸 욘 안데르센(노르웨이)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등과 교류하며 정보를 모은다”고 했다. 이어 “북한 축구와 관련해선 정부와 축구협회라는 두 기둥이 건강하게 작동해야 효과적”이라며 “내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다. 내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역할이든 자부심을 갖고 돕겠다”고 말했다.
차 감독은 17일 프랑크푸르트 코메르츠방크 아레나에서 열리는 ‘호나우지뉴와 친구들’ 자선경기에 함께 한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올스타팀 감독을 맡는다. 차두리 전 축구대표팀 코치는 선수로 뛴다. 차 감독은 “나는 내일만 바라보고 달리는데, 축구계와 팬들이 ‘지난 날’을 챙겨준다. 붐군차를 잊지 않고 불러준 팬들에게 좋은 경기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