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후 3시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T1) 면세점. 평일 낮임에도 면세점 담배 판매대 주변은 수십 명의 중국인으로 발을 디딜 틈이 없었다. 특히 일반 담배를 구매하는 고객과 함께 궐련형 전자담배인 '릴'과 '아이코스'를 사려는 중국인 관광객이 여럿 눈에 띄었다. 이들은 매장 직원에게 릴과 아이코스의 특징과 사용법을 물어보느라 분주하게 자리를 옮겨 다녔다. 또 저마다 한 손에 전자담배 기기와 전용 담배(스틱) 두 보루를 들고 있었다. 참고로 중국은 입국 시 담배 두 보루(400개비)까지만 허용된다.
이날 T1 면제점을 찾은 중국인 후이천(35)은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친구의 부탁을 받고 (전자담배를) 사러 왔다"며 "기기와 스틱이 다양해 뭘 사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중국인들의 전자담배 사랑(?)은 최근 문을 연 제2터미널(T2) 면세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T2 면세점은 담배 매장 옆에 별도의 전자담배를 피워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는데, 직접 시연해 보려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이곳에서 만난 중국인 장슈아이(42)는 "중국에서는 한국에서 판매하는 전자담배를 팔지 않는다. 직접 피워 보니 일반 담배와 맛이 비슷한 것 같다. 무엇보다 냄새가 덜 나 좋다"며 "기기를 샀는데 전용 담배를 두 보루밖에 못 사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전자담배 큰손 '중국인 관광객' 궐련형 전자담배가 중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쇼핑 아이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인들이 찾는 대표 제품은 KT&G의 '릴'과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다.
이 중 릴의 경우 올해 초 면세점 전체 매장 입점 완료 이후 전체 판매량이 112% 증가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KT&G 관계자는 "릴과 담배 스틱 핏의 경우 출시 초기 내국인 구매가 주를 이뤘지만, 현재 중국 관광객의 수요가 빠르게 느는 추세"라고 전했다.
릴의 선전에 힘입어 KT&G는 루이비통을 제치고 면세점 전체 매출 1위를 올해도 유지했다.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천국제공항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KT&G의 담배 매출액은 581억원에 달한다. 이는 루이비통의 매출액(354억원)보다 200억원 이상 높은 수치다.
특히 면세점 판매가가 한 보루당 35달러(약 4만원)로 일반 담배(25달러)보다 10달러 비싼 핏의 판매량은 KT&G 전체 담배 판매의 20%에 이른다.
필립모리스 역시 아이코스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같은 기간 전체 담배 매출 327억원을 기록, 지난해 매출 4위에서 3위로 한 단계 상승했다.
중국인들이 이토록 전자담배에 열광하는 이유는 '희소성'에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담배 소비국이자 생산국이지만 중국 내에서는 전자담배를 구하기 쉽지 않다. 외국산 전자담배의 중국 내 판매를 허락하지 않아서다. 사실상 중국인들이 릴과 아이코스 등 궐련형 전자담배를 구매할 수 있는 장소는 국내 면세점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담배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은 외국 담배 판매가 굉장히 제한적"이라며 "중국 내 수요가 많지만 워낙 구하기가 어려워 국내 면세점에서 많이들 사 간다"고 전했다.
본격적 공략에 나선 담배 제조사들 궐련형 전자담배가 면세점 효자 상품으로 떠오르자, 담배 제조사들은 앞다퉈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필립모리스는 인천공항 T2 면세점에 전자담배를 직접 시연해 볼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했다. 이곳에서 KT&G의 릴도 피워 볼 수 있다.
현재 인천공항 T1·T2 면세점에서 20개 매장을 운영하는 KT&G는 지속적 유통망 확충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강남에 위치한 현대백화점면세점(무역센터점) 10층에 10평 남짓한 '릴 단독 전용 매장'을 개점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이다. 통상 면세점의 경우 범주별로 브랜드를 모아서 판매한다. 담배 판매대에서 KT&G와 필립모리스 BAT의 담배를 모두 판매하는 방식이다. 주류 역시 마찬가지다. 면세점에 전자담배 단독 매장을 연 것은 KT&G가 처음이다.
KT&G 관계자는 "플래그십 컨셉트의 단독 매장을 통해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높일 계획"이라며 "이달부터 전국 시내·공항 면세점에서 '릴 미니' 출시를 기념해 한정 수량의 전용 목걸이 증정 행사 등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KT&G는 내친김에 해외시장도 넘본다. 임왕섭 KT&G 제품혁신실장(상무)은 지난 2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릴 하이브리드' 신제품 출시간담회에서 "국내 1위 사업자 지위 기반하에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며 "내년 중 아시아권 혹은 유럽권으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