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이 쌓여 있는 슬로프를 달릴 계절이다. 가파른 경사는 온몸을 짜릿하게 하고, 내 몸을 얹고 빠르게 눈밭을 가르는 속도는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22일 '2018 평창겨울올림픽'이 열린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휘닉스 평창에선 새하얀 슬로프를 내려오는 것 대신 빨갛고 파란색의 눈밭을 내려오는 '컬러 라이딩'이 펼쳐졌다. 평창겨울올림픽에서 한국 설상 종목 사상 첫 은메달을 안긴 국가대표 선수 이상호의 이름을 딴 '이상호 슬로프'가 생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이날 새로운 명물의 탄생을 알린 '컬러 라이딩' 현장을 직접 찾았다.
휘닉스의 새 명물 '이상호 슬로프'
이날 강원도 평창의 휘닉스 스노파크에서 '이상호 슬로프' 명명식이 있었다. 어린 시절, 강원도 정선 배추밭에서 스노보드를 탔던 '배추보이' 이상호는 지난 2월 평창겨울올림픽의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은 16강부터 1 대 1 맞대결을 펼쳐 코스를 더 빨리 통과하는 선수가 이기는 종목이다. 한국이 설상 종목에서 메달을 딴 것은 이상호가 처음이다.
이에 이상호가 은메달을 딴 휘닉스 평창 내 듀크슬로프를 ‘이상호 슬로프’로 이름을 바꾸기로 해, 이날 명명식을 가졌다. 휘닉스 평창은 이상호가 스노파크를 베이스로 시즌 동안 국내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후원한다.
형형색색의 컬러 파우더를 맞으며 컬러라이딩을 즐기는 참가자들. 휘닉스 제공
특히 이를 기념해 '컬러 라이딩 페스티벌'가 열렸다.
'컬러 라이딩'은 프랑스 몽블랑에서 열리는 '스키 컬러 페스티벌'을 본떠 국내에선 처음으로 시도된 행사다. 컬러 파우더는 유색 옥수수 전분 가루로 만들어져 인체에 무해하다.
‘배추보이’와 함께한 ‘컬러 라이딩’
공식 행사가 시작되는 오후 1시가 가까워지자 참가자들이 시작 지점인 1구간으로 몰려들었다. 맨 아래 지점에서 꼭대기까지 리프트를 타고 10분. 참가자들이 모이는 데 시간이 걸리면서 행사가 30여 분간 지연됐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컬러 파우더를 뒤집어쓰고 서로 가루를 뿌리며 웃고 떠들면서 그 시간마저 즐거운 듯 보였다. 시종일관 서로에게 색색의 가루를 뿌리며 축제를 즐겼다.
컬러라이딩의 시작을 알리며 활강을 준비하고 있는 은메달리스트 `배추보이` 이상호 선수(가운데)와 휘닉스 엠버서더들. 사진= 권지예 기자
출발 신호와 함께 이상호와 휘닉스 앰배서더 4명의 스노보더들이 오륜기 색상의 연막을 흩뿌리며 슬로프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첫출발에 이상호는 컬러 파우더를 뒤집어쓰지 않고 연막으로 하늘에 색을 입히며 라이딩했다.
이날 우진홍 휘닉스 평창 대표이사가 컬러 라이딩에 직접 참가해 행사에 의미를 더했다. 컬러 파우더를 뒤집어쓰고 슬로프를 내려가는 모습에 흥미를 느낀 우 대표는 직접 참여의 뜻을 내비쳤고, 컬러 파우더를 뿌리진 않았지만 출중한 스키 실력을 뽐내며 슬로프를 활강했다.
이어 컬러 라이딩에 참여한 350여 명의 참가자들이 각자 컬러 파우더를 들고 뒤를 따랐다. 참가자들이 내려가자 코멧·블래스터·파워샷 등 다양한 특수효과가 터지며 장관을 연출했다. 흰 눈 위에 자신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채 슬로프를 내려가는 장면이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다.
1구간에서 출발한 참가자들은 블루·핑크 파우더가 슬로프 위에 뿌려져 있는 2·3구간을 지나 종점으로 내려오는 라이더들에게 컬러 파우더를 뿌리며 맞이하는 4구간에 도달하게 된다.
참가자들이 한 차례 컬러 라이딩 슬로프를 즐긴 뒤 가장 먼저 출발한 이상호가 다시 1구간에 올랐다. 이번에는 다른 참가자들처럼 온몸에 컬러 파우더를 묻히고 활강해 보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축제를 더 즐기기 위해 뒤에 있던 스케줄도 미뤘다고 한다.
`배추보이` 이상호가 노란색 연막을 들고 슬로프를 활강하고 있다. 휘닉스 제공
이상호는 "다른 사람들과 컬러 파우더를 뿌리며 즐기니 파티를 하는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그는 "유명한 선수들의 이름을 딴 슬로프를 보고 진짜 부러웠는데, 내게도 현실이 되니 신기하고 영광스럽다"며 '이상호 슬로프' 탄생의 소감을 밝혔다.
휘닉스의 한 관계자는 “이번 컬러 라이딩은 2030세대에게 색다르고 즐거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었다”며 “내년 시즌에도 ‘컬러’를 테마로 한 행사를 구상 중이며, 이 행사가 휘닉스 스노파크에서만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문화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