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양순(64)씨는 올해 설부터 차례상 차리기에서 처음으로 해방됐다. 아들과 며느리가 일찌감치 차례상용 가정간편식(HMR)을 주문한 덕분이다. 김씨는 "이제 시대가 바뀌었는데 굳이 직접 차례상을 차려야 한다고 고집할 필요도 없고, 마음으로만 정성을 들이면 되는 것 아니냐"며 "아들 내외도 맞벌이라 간단히 차리는 게 편하고, 다들 명절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고 전했다. 며느리 최은민(37)씨도 "물가가 오른 요즘에는 직접 재료를 사서 차례상을 차리는 것보다 간편식 서비스가 오히려 더 싸다"며 "식구들끼리 먹을 과일과 주전부리 빼고는 따로 장을 보지 않아도 돼 편리하다"고 만족해했다.
설 식탁 넘보는 HMR 설 상차림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 재료부터 하나하나 장을 봐 준비하기보다 간편한 제수용 HMR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떡국부터 각종 전과 식혜까지 종류가 다양하고 품목도 늘어난 영향이다.
30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HMR 시장은 3조원을 넘어 연평균 21%의 성장률을 기록, 급성장하는 추세다.
HMR 시장이 연 4조원 규모로 급성장하는 가운데, 이번 설을 앞두고 지난 17~27일 이마트에서 판매된 피코크 제수 음식 매출은 지난해 설 기간 대비 27.3%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상 장보기가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명절 전 일주일 기준으로, 지난해 매출을 평상시 가정간편식 매출과 비교해도 약 15% 높게 나타났다.
총매출액과 종류도 계속 늘어난다. 2014년 피코크 제수용 HMR 상품 수는 6가지에 불과했고 매출도 1억원 수준이었지만, 2017년에는 종류가 40가지로 늘었고 매출도 10억원을 넘어선 11억4000만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설에도 상품 수는 47가지로 늘었고, 매출이 12억5000만원까지 상승했다. 이 같은 상승세를 고려해 이마트는 올해 설에는 상품 수를 50종까지 더 확대했다.
CJ제일제당도 간편식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올해 설에 '비비고 한식반찬' 매출이 지난해 설 시즌보다 10% 성장한 19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비비고 한식반찬은 '비비고 남도떡갈비' '비비고 언양식 바싹불고기' 등 총 5종이다. 혼자 명절을 보내는 '혼명족'이나 1·2인 가구를 타깃으로 한 간편식도 인기다. CJ의 '백설 감자전'과 '백설 김치전'도 부침 요리에 필요한 원물 가루와 손질된 원재료가 용기 하나에 모두 들어 있는 편의형 제품이다.
클릭 한 번으로 차례상을 통째로 최근에 아예 제수음식을 통째로 배달해 주는 제품들도 인기다.
한국야쿠르트 간편식 브랜인 '잇츠온'은 '명절 한상차림' 세트를 판매 중이다. 서울식 소불고기전골(4~5인분) 버섯부추잡채(4~5인분) 소고기뭇국(3~4인분) 신선란(10구) 꽃돌김(1통) 등 설 식탁에 오르는 메뉴로 구성됐다. 제품을 받는 즉시 간단히 요리할 수 있다. 가격은 8만4400원이다.
앞서 동원홈푸드는 가정간편식 온라인몰 '더반찬'을 통해 설 명절 '프리미엄 차례상' 예약 한정 판매를 실시했는데, 준비한 제품이 며칠 만에 완판됐다.
백화점도 설 상차림 세트 판매에 나섰다.
롯데백화점은 전·나물·국 등으로 이뤄진 간편한 상차림을 명절 기간에 판매한다.
가장 대표적인 상품은 ‘라운드키친7 상차림세트 1호’로 전 세트(8종·각 200g) 나물 세트(5종·각 300g) 소갈비찜(1kg) 소고기뭇국(1kg) 나박김치(1kg) 등 명절 대표 음식으로 구성됐으며, 25만9000원에 판매한다. 2~3인 세트인 ‘라운드키친7 상차림세트 2호’는 16만9000원에 제공한다.
이외에도 ‘소갈비찜(1.0kg)’을 9만9000원에, 완자전·깻잎전·표고버섯전 등 8가지 전으로 구성된 ‘전세트(800g)’를 5만9000원에, 고사리·도라지·시금치·콩나물·무나물 등으로 구성된 ‘나물세트(750g)’를 4만5000원에 제공한다.
현대백화점도 내달 4일까지 서울 압구정 본점 등 전국 15개 점포 식품관에서 HMR '원테이블'의 인기 상품으로 구성한 '원테이블 설 선물세트' 2종을 판매한다. '원테이블 설 선물세트'는 명인명촌 화식한우 소불고기·양구펀치볼 시래기밥·한우육개장 등 인기 상품 10종으로 구성된 '원테이블 가정식사 세트(8만3900원)'와 봉우리떡갈비·모짜렐라김치 서울만두 등 신제품을 포함해 7종으로 구성된 '원테이블 명절간식 세트(8만8800원)'다.
간편식 인기의 가장 큰 요인은 가격의 효율성이다.
롯대백화점의 대표 상품인 라운드키친7 상차림세트 1호의 경우 25만9000원으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조사한 올해 대형 마트의 4인 기준 설 상차림 비용인 27만6542원보다 저렴하다. 전통 시장(22만5242원)과도 3만원 정도 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직접 차례 음식을 요리할 때 투입되는 재료비, 시간 등을 고려해봤을 때 오히려 전통시장보다 싸다는 것이 롯데백화점 관계자의 설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설 상차림 세트는 합리적 가격대로 명절 음식 준비에 부담을 느낀 고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특히 주문 즉시 조리해 신선함이 유지되고 편의성이 높아 고객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