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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770. 오랜만의 구명시식
2004년 1월 26일이었다. 대학로 스타시티 공연장에서 '2004 갑신년 새해 운맞이 굿' 공연을 올렸다. 실제 구명시식을 극장으로 옮긴 공연에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다. 그날 극장에 찾아 준 분들 중에는 훗날 재계 회장·방송국 사장·언론사 대표·청와대 주요 보직에 오른 인사 등 크게 성공한 분들이 계셨으니, 제대로 ‘운맞이’를 증명한 셈이었다.
공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막 이름을 알리고 있었던 놀이패는 공연 이후 한 영화와 인연을 맺어 크게 성공했다. 그때 공연장에 섰던 구명시식 가무단 단원들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예인들로 우뚝 성장했다.
그날 구명시식 공연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나와 인연이 깊은 한 연극연출가는 많은 기회를 주었음에도 구명시식보다 외국 연극 작품만 고집했다. 그렇게 15년이 흐르고 얼마 전, 내게 구명시식을 신청했다. 다시 구명시식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구명시식을 신청했다. 그때마다 건강을 이유로 거절했다. 구명시식을 해도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고, 또 장시간 구명시식을 버틸 체력이 될지 자신 없었다. 하지만 신청자들의 간절한 사연을 들으면서 언제까지 구명시식을 거절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마침내 구명시식을 올렸다.
첫 번째 구명시식 신청자는 지금까지 무려 13번이나 구명시식을 했다. 그는 “구명시식을 올릴 때마다 소원을 안 이뤘던 적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28세 사회 초년병이었던 그는 최연소 구명시식 신청자 기록을 갖고 있었다. 그 후 구명시식을 올릴 때마다 직장에서 승진했고, 결혼도 했고, 늦둥이 자녀도 갖게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팔순을 앞둔 아버지가 폐암 말기로 투병 중이시라 자신이 집안 제사를 맡게 되었는데, 특별히 조부님 제삿날에 구명시식을 올리기를 원해 그날 구명시식을 했던 것이다.
두 번째 신청자는 1998년 한 공중파 TV에 구명시식을 방송할 때 소개된 부부였다. 자주 다퉜던 부부가 이혼 직전에 나를 찾아왔다. 구명시식 결과, 전직 형사였던 시아버지와 원한 관계로 얽혀 있던 영가 때문에 불화가 잦았음이 밝혀졌다. 영가를 잘 천도해 주자 장사는 날로 번창했고, 사업도 확장해 큰 부자가 됐다. 그런데 몇 년 동안 나를 찾아오지 않아 근황이 궁금했던 차에 오랜만에 부부가 구명시식을 신청했던 것이다. “그동안 아내가 암으로 투병 생활을 했습니다. 사업도 예전보다 안 됐습니다. 법사님께서 아프시다는 소식에 일부러 찾아뵙지 않았는데, 그러다 보니 건강도 사업도 더 안 좋아져서 염치 불구하고 구명시식을 신청하게 됐습니다.”
세 번째 신청자는 땅이 팔리지 않아 답답해하고 있었다. 구명시식을 해 보니 그 땅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었다. 수십 년 전 한 여인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매장됐던 땅이었다. 나는 여인 영가를 잘 위로해 땅이 팔리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네 번째 신청자는 장애가 있어 성장이 더딘 아들을 키우는 부부였다. 부부는 구명시식을 한 뒤 아들이 취직에 성공해 직장에 잘 다니고 있다며 감사해하면서, 꼭 결혼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마지막은 나와 인연이 깊은 연극연출가였다. 그는 구명시식을 통해 지금부터 우리 연극, 우리 것을 찾아다니는 연극연출가로 거듭나고 싶다고 고백했다.
구명시식이 끝나자 나는 왠지 입안이 허전했다. 알고 보니 ‘생니’ 하나가 빠져 있었다. 그 정도로 완전히 몰입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장장 6시간을 휘몰아치며 구명시식에 빠졌던 것이다. 장시간의 구명시식에도 힘들거나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심장은 최고 속력으로 레이싱을 완주한 카레이서처럼 두근거렸다. 그날 구명시식 주재는 내가 했지만, 신청자들의 간절함이 만들어 낸 구명시식이었다.
(hooam.com/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