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환(31)씨는 2주에 한 번 허벅지에 주사기를 꽂는다. 30년 가까이 앓아온 아토피피부염 때문이다. 김씨는 어릴 때부터 여러 병원을 다녔고 대체의학에 민간요법까지 써봤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 사이 증상은 더 심해졌다. 그러다 작년 말 아토피피부염 주사제가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주사 바늘을 무서워하는 김씨는 처음에는 직접 주사를 놓아야 한다는 말에 걱정을 했지만 병원에서 교육을 받고 나니 생각보다 자가 투여가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존 치료제보다 효과가 좋아 투여 2주 만에 가려움증이 줄어 주사제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다. '자가투여 주사제(이하 자가 주사제)'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인슐린 주사를 떠올린다. 하지만 최근 다양한 질환에 자가 주사제가 폭 넓게 사용되고 있다. '강남 다이어트 주사'로 인기를 끌고 있는 비만 치료제, 20년 만의 아토피피부염 신약인 중증 아토피피부염 치료제, 심혈관 질환의 위험 감소 효과가 있는 고콜레스테롤혈증 치료제 등이다. 새로운 생물학적 제제 등 최신 기술을 앞세운 주사제들은 치료 효과 뿐 아니라 펜 타입 등으로 투약 편의성도 높아 환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도 한다. 주목받고 있는 다양한 질환의 자가 주사제를 살펴본다.
당뇨병 치료 최신 주사제
자가 주사제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인슐린 주사다. 인슐린은 혈당을 체내의 세포 속으로 들어가게 해서 에너지를 만드는 연료로 사용하게 하는 필수 호르몬이다. 정상인의 경우 24시간 동안 지속적인 기저 인슐린과 식후 혈당 조절을 위한 식후 인슐린이 분비된다.
하지만 인슐린을 스스로 만들어 공급할 수 없는 당뇨병 환자는 인위적으로 체외에서 인슐린을 공급해줘야 한다.
대한당뇨병학회가 2017년 발표한 제2형 당뇨병 약제 치료 지침에 따르면 적절한 경구혈당강하제 치료에도 불구하고 혈당 조절이 안되면 외부에서 주사로 투여하는 인슐린 요법을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인슐린은 단백질로 되어 있어 경구로 복용할 경우 위에서 모두 파괴돼 반드시 피하주사로 투여해야 한다. 그래서 여러 인슐린 주사제가 나와 있다. 인슐린은 작용 시간에 따라 초속효성(3~5시간)·속효성(3~6시간)·중간형(10~16시간)·지속형(24시간) 등으로 나눈다. 공복시 분비되는 기저 인슐린은 지속형 인슐린 투여로 24시간까지 혈당강하 효과가 나타난다.
최근 하루 한 번 주사로 하루종일 공복 혈당과 식후 혈당을 동시에 조절할 수 있는 펜 타입의 주사제가 관심을 받고 있다.
'고정비율 통합제제' 주사제는 기저 인슐린과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수용체 작용제(GLP-1 RA)'가 함께 투여된다. GLP-1 RA는 체내 혈당 수치에 따라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하거나 혈당을 높이는 글루카곤의 분비를 억제한다.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임수 교수는 "대한당뇨병학회의 지침에서 혈당 조절이 어려운 당뇨병 환자에게 기저 인슐린에 속효성 인슐린을 추가하는 것과 더불어 기저 인슐린과 GLP-1 RA를 병용하는 인슐린 강화 요법 등을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구제로 조절 힘든 LDL 콜레스테롤, 주사제로 관리
혈관 속에 쌓이는 LDL 콜레스테롤은 소위 '나쁜 콜레스테롤'로 불리며 심근경색 등 생명을 위협하는 심혈관 질환의 원인이 된다.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고지혈증약은 고혈압약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복용하는 약이지만, 먹는 약만으로는 목표 수치만큼 낮추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심근경색과 같은 죽상경화성 심혈관 질환을 경험한 환자 5명 중 4명은 스타틴(대표적인 콜레스테롤 강하제) 치료에도 불구하고 목표한 LDL 콜레스테롤 감소 효과를 얻지 못해 추가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PCSK9 억제제는 LDL 수용체의 분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PCSK9 단백질의 활성을 저해하는 기전을 통해 혈중 LDL-C 수치를 낮춘다. 월 1회 혹은 2주 1회 투여하는 피하 주사제로 콜레스테롤 수치 강하에 효과를 나타내면서 심근경색 등 심혈관 질환에 대한 위험을 감소시킨다.
특히 콜레스테롤 수치는 낮으면 낮을수록 심혈관 질환 예방에 좋다는 연구결과가 연이어 발표되면서 국내에서도 주사제로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사람들이 점차 늘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토피피부염 환자 위한 자가 피하 주사제
아토피피부염을 가벼운 피부병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만성 전신 면역 질환으로 복합적인 유전·환경적 원인으로 과도하게 활성화된 면역계가 염증 반응 물질을 피부 표면에 전달하면서 염증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신체 여러 부위에 가려움증·발진·건조증·부스럼 등을 야기한다.
증상이 가벼울 경우 국소 스테로이드제, 항히스타민제, 국소 칼시뉴린 저해제 등을 사용하고, 중증 환자에서는 사이클로스포린과 같은 전신 면역억제제를 사용하거나 전신 스테로이드제를 한시적으로 사용해왔다. 그러나 부작용의 위험으로 장기간 사용에 어려움이 있었다. 최근 선택적으로 아토피피부염의 병인 기전에 사용되는 표적 생물학적 제제가 나왔다. 사노피 젠자임이 자가 피하 주사제로 내놓은 이 치료제는 임상 연구 결과에서 투여 16주 시점에서 약 2명 중 1명의 환자가 병변의 크기 및 중증도에서 75% 이상의 개선 효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주사제는 2주에 한 번씩 투여하며, 단독 혹은 국소 코르티코스테로이드(TCS)와 병용으로 투여할 수 있다.
품절 사태 빚은 '강남 다이어트 주사제'…불법유통 문제도
최근 다이어트 열풍의 주역에 선 자가 주사제도 있다. GLP-1이라는 호르몬과 97% 비슷한 '리라글루티드' 성분이 들어있는 피하 주사형 비만 치료제가 그 주인공이다. GLP-1은 우리 몸에서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 중 하나로, 식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리라글루티드는 GLP-1과 유사한 작용을 한다. 사실 이 치료제는 당뇨병 환자의 혈당 조절을 위해 개발됐다가 식욕을 덜 느끼게 하고 덜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도록 해 체중 조절을 돕는 효과가 입증되면서 비만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다.
국내에는 작년 3월 출시된 이후 '강남 다이어트 주사제'로 입소문을 타면서 품절 현상까지 빚어졌다. 일부에서는 전문의약품임에도 전문의 처방없이 구해 투여하기도 하고, 일부 병원에서 적합하지 않은 환자에게 과잉처방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이 주사제는 초기 체질량지수(BMI)가 30kg/㎡ 이상인 고도 비만 환자나 BMI 27㎏/㎡ 이상이면서 당뇨병·고혈압·이상지질혈증 등 체중 관련 동반 질환이 있는 환자에게 처방하도록 허가됐다. BMI 30㎏/㎡ 이상은 키 160㎝ 기준으로 몸무게 76.8㎏ 이상이며, BMI 27㎏/㎡ 이상은 키 160㎝ 기준 69.2㎏ 이상이다. 이 주사제는 12주간 투여 후에도 초기 체중의 5% 이상이 감량되지 않은 경우 치료를 중단해야 한다. 부작용으로는 소화 불량과 입이 마르는 증상, 속이 울렁거리거나 구토·설사·변비 등 위장 장애가 흔하게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