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박찬욱 감독이 드라마 연출가로 컴백했다. 박찬욱은 역시 박찬욱. 낯선 시대 배경, 익숙하지 않은 첩보 세계에서도 박찬욱 감독 특유의 색깔은 고스란히 녹아있다.
20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는 영국 BBC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박찬욱 연출)' 시사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이번 작품을 통해 첫 미니시리즈 연출에 도전한 박찬욱 감독이 참석해 작품과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리틀 드러머 걸'은 1979년 이스라엘 정보국의 비밀 작전에 연루되어 스파이가 된 배우 찰리와 그녀를 둘러싼 비밀 요원들의 숨 막히는 이야기를 그린 첩보 스릴러다.
"원작을 읽고 첩보 스릴러인 동시에 로맨스라는 점에서 매료됐다"고 연출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운을 뗀 박찬욱 감독은 "내가 처음 매료된 첩보물의 매력이 다른 것에 희석되지 않길 바랐다"며 "각색을 하는데 있어서는 긴장, 총격, 추격 등 첩보물의 자극적인 요소에 묻히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박찬욱 감독은 "원작에서는 배경이 80년대 초인데, 우리는 79년으로 옮겼다. 원작자에게 동의를 얻었다. 유럽의 극좌파 테러 조직이 팔레스타인 조직과 연계해서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80년대였다. '이게 좀 더 가깝다'고 생각해서 79년으로 옮겼고, 그 시대의 분위기를 어떻게 옮길지 미술 감독과 많은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이어 "70년대를 다루는 영화를 보면 히피의 느낌이 많이 남아있는데, 79년은 8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라 '그 중간 어디쯤을 찾아보자'고 했다"며 "자동차, 녹음기, 도청장치 등 요즘에는 볼 수 없는 구식 아날로그의 향수를 자아내는 소품이 등장해서 재미있었다"고 덧붙였다.
스파이 소설의 거장 존 르 카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리틀 드러머 걸'은 '현실 세계의 스파이를 연기하게 된 배우'라는 흥미로운 설정과 몰입도 높은 스토리 전개,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볼거리가 강점이다.
현실 세계 스파이로 캐스팅된 무명 배우 찰리 역은 플로렌스 퓨가, 정체를 숨긴 채 그녀에게 접근한 비밀 요원 가디 베커는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열연 했으며, 이 모든 작전을 기획한 정보국 고위 요원 마틴 쿠르츠는 마이클 섀넌이 맡아 깊이감을 더한다.
'리틀 드러머 걸'은 유럽의 각국을 배경으로 한다. "로케이션은 재미있지만 어려운 문제였다"고 토로한 박찬욱 감독은 "사실 작품에는 레바논, 이스라엘, 유고슬라비아 등 나라도 등장하지만 직접 돌아다니면서 촬영 하기에는 물리적 어려움이 있었다. 영국, 그리스, 체코 등 도시에서 영리하게 부분 부분을 잘 포착해 찍었다.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이동으로 다양한 지역 색을 표현할 수 있을까'가 가장 큰 도전이었다. 그만한 보람이 있었던 것 같다"고 귀띔했다.
특히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은 지난해 영국 BBC와 미국 AMC에서 방영된 방송판과 차별화된 버전이라 더욱 기대를 모은다. 감독판은 방송 심의 기준과 상영시간 제한에 따라 방송판에서 제외된 다수의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은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을 집중해서 본다면 '기존 방영분과 같은 게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디테일 등 모든 게 다르다"며 "편집 자체가 다르고 배경음악도 다르다"고 밝혔다.
또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연기와 방송국이 좋아하는 연기 사이에 의견 차이가 생겼을 때도 있었다. BBC는 폭력 묘사에 대해 엄격하고, AMC는 욕설에 대해 엄격하기 때문이다. 결국 다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빼야 했다"고 폭로해 웃음을 자아냈다.
박찬욱 감독은 "물론 시작부터 이를 알고 찍었기 때문에 애초 심하게 자극적이거나 폭력성이 있었던건 아닌데 찍다 보면 의도하지 않았어도 그렇게 나오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나. 자연스럽게 두고 싶었는데 방송판은 억지로 편집해야만 했다. 감독판에는 그대로 담았다"고 말했다.
"영화로 편집해 상영할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는 "안 된다. 못한다"고 단언, "생각을 안 했던건 아니지만 6회 분량을 120분, 130분 러닝타임으로 줄여서는 너무 희생이 크고 훼손이 될 것 같더라. 아무래도 답이 안나와 '그건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이와 함께 박찬욱 감독은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을 왓챠플레이에서 공개하게 된 것에 대해 "왓챠플레이는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을 제약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이자, 내 작품을 가장 좋아할 사람들에게 잘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이다"고 소개했다.
그는 "영국에서는 매주 에피소드를 하나씩 내보냈고, 미국에서는 두개씩 묶어 선보였다. 왓챠에서는 한꺼번에 공개되니까 원하는 사람은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차이다"며 "요즘은 시리즈 드라마를 주말에, 몰아서, 한번에, 밤새 보는 시청 방식이 많지 않나. 그것이 가능한 시대이고, 만든 사람 입장에서는 더 좋은 것 같다. 영화를 하던 사람이라 그런지 나 역시 한번에 보는게 더 흥미롭더라"고 긍정의 반응을 내비쳤다.
박찬욱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은 오는 29일 전 세계 최초로 왓챠플레이를 통해 6편 전편이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