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인(28·현대캐피탈)의 눈물 속에 땀의 가치와 고뇌 그리고 열망이 있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그는 올 시즌 최고의 선수가 될 자격이 있었다.
전광인은 지난 26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2018~2019 도드람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 나서 20득점·공격성공률 53.57%를 기록하며 세트스코어 3-1(25-20 30-32 25-19 25-20)로 현대캐피탈의 승리를 견인했다. 원정 계양체육관에서 치른 1·2차전을 모두 잡은 현대캐피탈은 세 경기 만에 시리즈를 끝내며 통산 네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홈에서 축포를 쐈고, 두 시즌 만에 정상을 탈환했다.
전광인은 세 경기에서 55득점·공격성공률 55.13%·세트당 블로킹 0.571개·서브 0.286개·리시브효율 39.29%를 기록했다. 챔프전 출전 선수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기록을 남겼다. 기자단 투표에서 89.7%(29표 중 26표)의 지지율을 얻으며 MVP로 선정됐다.
2013~2014시즌을 앞두고 진행된 드래프트에서 한국전력에 1라운드 지명을 받은 그는 지난 다섯 시즌 동안 리그 대표 공격수로 자리매김했지만, 팀 전력 탓에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은 지난해 5월 현대캐피탈로 이적했고, 이적 첫해부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차전 종료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눈물을 보였다. 우승을 향한 열망 탓에 감정이 북받쳤다. 꿈이 실현된 뒤에도 "기분을 표현하기 어렵다"며 실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고된 여정이었다.
◇ 순탄하지 않았던 적응, 자성으로 성장
연착륙하진 못했다. 첫 이적, 새 팀에 녹아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열린 KOVO컵 KB손해보험전 작전타임 때는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의 쓴소리도 들었다. 최 감독은 전광인을 향해 "너 이 팀에 왜 왔어"라고 쏘아붙였다. 11월 열린 미디어데이에서는 "팀워크를 위해 전광인이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 적응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최 감독은 우승을 열망하는 선수가 올바른 방향으로 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다그쳤다. 그리고 전광인은 감독의 바람대로 나아갔다. 팀에서 원하는 역할을 했다. 정규 시즌 개막 이후 공격뿐 아니라 강점인 리시브 능력을 유감 없이 보여 줬다. 주축 선수들이 부상당해 이탈했을 때도 코트를 지키며 헌신적인 자세를 보여 줬다.
전광인은 KOVO컵에서 최 감독에게 들은 말을 돌아보며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기술적으로는 완성된 선수다. 감독의 일침에 반성을 통해 마음가짐을 다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사령탑은 우승 이후 "뒤에서 궂은일을 다 했다. 우승에 그의 역할은 매우 컸다"는 말로 그를 높이 평가했다.
다음 시즌에는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 줄 전망이다. 전광인은 팀 선배자 현대캐피탈 캡틴인 문성민을 향해 존경과 감사를 전했다. 동시에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봤다. "내가 서브 리시브 범위가 더 넓고 안정감이 생긴다면 (문)성민이 형과 함께 뛸 기회도 늘어날 것이다. '아직 내가 그 정도를 커버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들더라"고 전했다. 이미 높은 평가를 받는 리시브를 더 잘 해내겠다는 각오를 전한 것이다.
◇ 매 순간 아이싱, 투혼으로 치른 챔프전
전광인은 무릎 통증을 안고 봄 배구를 치렀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끝난 뒤 하는 아이싱을 전부터 해야 했다. 2차전에는 스파이크 이후 착지한 뒤 넘어지지도 않았는데 무릎을 부여잡았다. 그는 우승 확정 이후 "사실 힘들었다. 경기 전과 진행 중에도 진통제를 먹으면서 나섰다"고 돌아봤다.
장기 레이스 이후 플레이오프까지 소화했다. 현대캐피탈 선수 다수가 정상이 아니었다. 외인 파다르는 허리 통증을 안고 있었고, 문성민도 무릎이 안 좋았다. 세터 이승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공격점유율이 많고, 리시브까지 하는 레프트 전광인의 부담은 더 컸다.
우승하고 싶어서 버텼다. 그는 "그렇게 해서라도 뛰고 싶었다. 결과를 만들고 싶었다.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2차전 종료 이후 보인 눈물도, 부상에 대해 묻는 질문에 "우승하고 싶어서 참았다"는 답변을 하다가 나왔다. 투혼으로 일군 우승. 그의 2018~2019시즌이 더 특별한 이유다.
◇ 현대캐피탈, 통합 우승을 겨냥하다
최 감독은 "다음 시즌에는 통합 우승을 노리겠다"고 했다. 정규 시즌에 우승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도 드러냈다.
왕조 구축의 기틀을 잡았다. 전광인은 이미 녹아들었다. 기량뿐 아니라 팀이 추구하는 배구의 중심이 됐다. 신영석과 최민호 센터 라인도 리그 최고 수준의 전력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젊은 선수가 성장했다. 시즌 초반부터 세터 부재에 시달렸지만, 최 감독은 이승원을 믿었다. "봄 배구에서는 더 잘할 것이다"고 장담했다. 실제로 이승원은 안점감 있는 경기 운영뿐 아니라 강점인 높이로 수비 기여도까지 높였다. 우리은행과 플레이오프 2차전, 챔프전 2차전 5세트에서 외인 파다르의 공백을 메운 허수봉의 등장도 반갑다.
최 감독의 친화 리더십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우승 확정 직후 눈물을 보였다. 경험 부족과 부상 여파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세터 이승원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다그칠 때는 다부지다. 그러나 고마운 마음을 전할 때는 주저없다. 그 어느 해보다 어려운 시즌을 치르고 정상에 올랐다. 지도자들과 선수 사이 팀워크도 더 좋아졌다.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