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가와사키 프론탈레(승점 3·조 3위)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H조 3차전 홈경기(울산 문수축구경기장)를 펼치는 울산 현대(승점 4·조 1위)는 공격력을 가다듬는 데 힘을 쏟는다. 가와사키의 골문에는 '수호신'이라고 불리는 사나이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골키퍼 정성룡(34·가와사키)이다.
2016년 수원에서 가와사키로 이적한 정성룡은 최근 일본 J리그1(1부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골키퍼로 꼽힌다. 2018년 정규 리그 31경기에서 24실점을 기록한 그는 작년 12월 J리그 시상식에서 베스트11에 선정돼 리그 최고 골키퍼를 차지했다. 지난 시즌 가와사키는 리그 18개 팀 중 가장 적은 골을 허용한 팀이다.
실점이 많아 중위권을 맴돌던 가와사키는 정성룡의 눈부신 선방을 앞세워 2017년 구단 역사상 첫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데 이어 지난 시즌까지 리그 2연패(2017·2018)를 이뤘다. 지난 2월에는 전년도 리그 우승팀과 FA컵 우승팀이 맞붙는 슈퍼컵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가와사키 홈 팬들은 구단의 역사가 정성룡 입단 전과 후로 나뉜다고 평가한다.
정성룡은 2016년 입단 이후 3년 연속 0점대 실점률을 달성하며 J리그1 최고의 골키퍼로 꼽힌다. 사진=가와사키 프론탈레 홈페이지
최근 일본 도쿄 신오쿠보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성룡은 "골을 넣을 때도 좋지만, 슛을 막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제가 열심히 하는 만큼 팀에 보탬이 되니 뿌듯합니다"라며 웃었다. K리그 팀과 맞대결을 앞둔 소감을 묻자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놨다. "울산은 현재 리그 1위 팀이잖아요. 김보경·신진호·주니오가 이끄는 막강 공격진을 어떻게 막아 내냐가 승부를 가를 것 같아요. 원정경기라서 쉽지 않겠지만, 동료들과 많은 얘기를 하고 철저히 준비하겠습니다."
가와사키는 J리그 선수들 사이에서 붙고 싶지 않은 팀 1위로 꼽힌다. 세밀한 패스와 탄탄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일명 '끈적한 축구'를 펼치기 때문이다. 웬만한 팀은 가와사키를 상대로 몇 차례 주도권을 잡기도 어렵다. 빠르고 현란한 패스 탓에 상대팀 공격수가 제대로 공 한번 잡아 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세밀한 패스와 팀워크를 바탕으로 경기를 펼치는 가와사키 프론탈레. 이런 가와사키의 공격 시작은 최후방 정성룡의 발 밑에서 시작한다. 사진=가와사키 프론탈레 홈페이지
가와사키에서는 골키퍼가 공격 전개의 시작이다. 전술상 최후방부터 빌드업해 물 흐르듯 전방으로 패스가 전개된다. 아무리 점프력이 좋고 민첩성이 뛰어나도 '발밑' 능력이 받쳐 주지 않는 골키퍼는 팀에 녹아들 수 없다. 정성룡은 일본 무대를 밟은 첫 시즌, 일본어와 팀 분위기를 익히는 것만큼 빌드업 훈련에 시간을 할애했다.
"골키퍼가 잘 막기만 하면 되지 않냐고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우리팀은 좋은 선수들이 많지만, 조직력과 패스를 중요시해요. 전술을 펴 나가는 과정에서 골키퍼를 거쳐야 하고요. 제가 싫어도 경기 중 수시로 공을 받게 돼 있는데, '발밑'이 좋지 않으면 적응이 어렵죠. 신입 외국인 선수로 실력을 보여 줘야 했으니까요. 말 그대로 틈만 나면 패스 연습을 했어요. 쉴 때도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풋살을 했고요."
팀의 부주장을 맡을 만큼 팀의 중추적 존재가 된 정성룡. 그는 경기장으로 향하는 구단버스 안에서부터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시합에 일어날 일을 그려본다. 사진=가와사키 프론탈레 홈페이지
정성룡은 부주장을 맡을 만큼 중추적 존재가 됐다. 그리고 여전히 흐트러짐 없이 경기를 준비한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구단 버스 안에서 시작되는 이미지 트레이닝이 대표적이다.
"경기장으로 이동할 때마다 떠올리는 10가지 장면이 있어요. 그라운드에 나가는 순간을 떠올립니다. 그 다음에는 동료에게 패스를 받으면 어느 발로 받아서 어느 방향으로 컨트롤할지로 이어지죠. 그다음에는 상대 슛을 막는 것을 떠올리죠. 뛰는 모습을 그려 보는 등 시합에서 일어날 상황을 머릿속으로 미리 한번 해 보면서 긴장을 푸는 일종의 루틴입니다. 저는 평범한 편이에요. J리그는 워낙 개성이 강한 선수들이 많아 별난 방법으로 긴장을 푸는 선수들이 많거든요.(웃음)"
'디테일'에 더 신경 쓰는 것은 일본 축구를 접한 뒤 생긴 변화다. 그는 작은 요소 하나가 최고의 경기력과 최상의 컨디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정성룡은 동료이자 팀 최고참인 나카무라 겐고(39)에게 컨디션 조절과 자기 관리에 관한 조언을 들었다고 했다. 한국 나이로 마흔인 겐고는 2003년 데뷔해 17년간 가와사키에서만 뛴 원 클럽 맨이자 레전드다. 올 시즌 팀이 치른 6경기에 모두 출전해 1골을 기록 중이다.
"축구를 더 잘하고 싶어요.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보다 많고 더 세밀한 준비 작업을 하게 됐어요. 한국에서 뛸 때는 훈련 1시간 전에 미리 도착해 샤워하고 스트레칭으로 준비했어요. 지금은 2시간 혹은 더 빨리 훈련장에 나갑니다. 그리고 필요한 근력 운동을 하고 마사지받아요.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해도 부상을 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게다가 저는 일본에서 외국인 선수인데, 더 잘해야 하는 책임감도 있고요."
두 아들과 두 딸은 정성룡의 든든한 응원군이다. 아이들과 게임을 하고 있는 정성룡의 모습. 사진=정성룡 인스타그램 그에게 가족은 든든한 응원군이다. 2008년 미스코리아 출신 임미정(32)씨와 결혼한 정성룡은 슬하에 2남(강민 9세·현민 7세) 2녀(유민 8세·아민)를 뒀다. 막내딸 아민은 지난달 12일 태어났다. "둘째 유민이가 외로웠는데, 여동생이 태어나서 무척 좋아하네요. 두 아들과 두 딸을 생각하면 힘이 팍팍 납니다.(웃음)"
2003년 포항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정성룡은 산전수전 다 겪은 17년 차 베테랑이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한국 축구 역사상 첫 원정 16강에 기여했고, 2014 브라질월드컵에도 출전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축구사에 다시 한 번 큰 획을 그었다. K리그 우승(2007년 포항)과 AFC 챔피언스리그 정상(2010년 성남)도 차지했다.
산전수전 다 겪어도 정성룡의 욕심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J리그 3연패·ACL 우승 트로피에 대한 갈망을 드러냈다. 사진=가와사키 프론탈레 홈페이지
인터뷰 말미에 "이제 큰 욕심은 없겠어요"라고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수원 시절 서정원 감독님께서 경기를 이긴 뒤 늘 하셨던 말씀이 있어요. '한 경기 이겼다고 절대 만족해서는 안 된다'였어요. 한 번 이겼다고 긴장이 풀려선 안 된다는 뜻이죠. 저는 아직 해 보지 못한 게 너무 많아요. J리그 3연패와 FA컵 우승도 해 보고 싶어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도 다시 한 번 들어 올렸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