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열린 2019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E조 가시마 앤틀러스와 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친 쿠니모토. K League 제공
‘악마의 재능’, ‘돌아온 탕아’.
경남 FC의 일본인 선수인 쿠니모토 다카히로(21)를 설명할 때 붙는 표현이다. 어린 나이에 화려하게 일본 축구계에 등장했으나 재능을 꽃피우기도 전에 문제를 일으켜 두 번이나 방출당하고, 갈 곳 없이 떠돌다가 K리그에 정착해 경남에서 드디어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고 있는 선수.
일본 축구계에서 잊혔던 쿠니모토가 모국인 일본 J리그의 강팀 가시마 앤틀러스를 상대로 화려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쿠니모토는 지난 9일 경남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조별리그 E조 3차전 가시마와 경기에서 말 그대로 맹활약을 펼쳤다. 비록 팀은 경기 막판 18분여 동안 3골을 내리 내주며 2-3으로 허무한 역전패를 당했지만 쿠니모토의 활약은 눈부셨다.
이날 경남이 기록한 두 골은 모두 쿠니모토의 발끝에서 나왔다. 후반 11분 측면에서 골문을 향해 올린 크로스는 가시마의 수비수인 이누카이 도모야의 실책을 유발해 자책골을 만들어 냈고, 후반 26분 코너킥 상황에서 조던 머치에게 정확한 크로스를 올려 추가골에 도움을 기록했다. 오이와 고 가시마 감독이 “쿠니모토 때문에 경기가 어려워졌다”고 높이 평가했을 정도다.
그동안 K리그1(1부리그)에서 꾸준히 좋은 경기력을 보였던 쿠니모토지만, 가시마전에서 보여 준 활약은 그의 과거를 생각했을 때 조금 더 특별하다. 쿠니모토는 한때 일본에서 축구 천재로 불릴 정도로 촉망받는 선수였다. 2013년 우라와 레즈 유소년팀에 입단해 그해 10월 일왕배 경기에서 만 16세 나이로 프로 데뷔골을 넣으며 당시 팀 내 최연소 출장 및 득점 기록을 갈아 치웠다. 그러나 이듬해 미성년자 흡연 등 문제를 일으켜 방출당했고, 아비스파 후쿠오카에 입단했으나 다시 문제를 일으켜 입단 3년 만에 또다시 방출됐다.
K League 제공
이런 쿠니모토에게 일본 팀인 가시마와 벌인 대결은 아무래도 각별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쿠니모토는 담담하게 “상대가 일본 팀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의식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의욕적이었던 부분은 있다”며 웃었다. 그래도 특별한 마음가짐보다는 “일본에서 원정경기를 치르게 되겠지만, 우리 홈에서 가시마가 이겼으니 다음에는 가시마 홈에서 경남이 승리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는 말로 일본 팀과 맞대결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경기 외적인 문제로 두 번이나 방출당한 쿠니모토에게 경남은 단어 그대로 재기의 장이었다. 9일 경기가 끝난 뒤 만난 쿠니모토는 “축구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성장했다. 여기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말썽쟁이 축구선수에서 ‘외국인 선수’라는 책임감을 안고 경남의 공격 핵심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자신의 모습을 두고 '성장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뛰다 보니 어려운 점도 있었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르게 살았는지 여기 와서 느꼈다”고 얘기한 쿠니모토는 “같은 아시아지만 경남에서 나는 외국인 선수로서 뛰고 있다. 그만큼 결과를 남기지 않으면 팀에 남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을 항상 의식하고 있다”고 자신이 느끼는 책임감을 전했다.
김종부 감독의 지휘 하에 한창 성장 중인 경남과, 잊혀졌던 ‘재능’을 꽃피우려는 쿠니모토의 만남은 상성이 좋았다. 쿠니모토는 “가시마전에서 결과적으로 패배한 만큼, 앞으로는 2골을 넣었더라도 만족하지 않고 1골을 더 넣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기술 면에서 가시마에 뒤진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기고 있든 지고 있든 강한 의지를 갖고 뛰어야 한다는 생각도 커졌다”며 “이런 부분에서 축구에서 성장하고 있다”고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쿠니모토는 더 목소리를 내서 팀을 이끌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K League 제공 아쉬운 부분은 역시 언어다. 한국 음식을 좋아해 적응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아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쿠니모토는 “아무래도 동료들과 대화가 더 잘 이뤄진다면 지금 보여 주는 것보다 더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조금 더 목소리를 내서, 말은 통하지 않을지라도 팀을 이끌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진지하게 덧붙였다.
경남에서 자신의 축구 인생을 새로 쓰고 있는 쿠니모토에겐 또 하나의 목표가 있다. 모국 일본에서 열리는 2020 도쿄올림픽 출전이다. 쿠니모토는 “내 꿈은 도쿄올림픽에 나가는 것이었고, 언제나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도쿄올림픽에 나가기 위해서는 경남을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사실 역시 매일 되새긴다. 그는 “먼저 팀으로 결과를 남기지 않으면 (대표팀에) 불릴 수 없다. K리그와 ACL에서 경남의 승리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