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PD와 베테랑 스태프의 안타까운 사고에도 드라마 제작 환경은 개선되지 않았다. 개선한다고는 하나 기미가 안 보인다.
2017년 12월 23일 tvN '화유기' 세트장에서 소품 담당 스태프가 3m 높이의 천장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늦은 밤까지 진행된 촬영에서 적절한 안전장치도 없이 작업을 강행했다. 이로 인해 스태프는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고 재활 치료 중이다.
이로부터 1년 3개월이 지났지만 변화는 없다고 할 정도다. 10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와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이하 희망연대)는 tvN 새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 최진희 대표를 서울 고용노동청에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다며 고발했다. 장시간 근로는 물론 해외 촬영 중 현지 코디네이터의 조언을 무시하고 야간 촬영을 강행해 한 스태프의 팔이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드라마 촬영장에 안전 불감증이 여전함을 보여주고 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한빛센터와 대화 끝에 지난해 9월 하루 근무시간 14시간, 주 근무시간 68시간 제한 등을 약속하는 제작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협력 제작사에 전달했다. 이를 위해 B팀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불가피하게 14시간 이상 근무할 경우 충분한 휴식을 위해 다음 날 촬영 시간을 조정하거나 휴가 부여를 원칙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스달 연대기' 스태프들에 따르면 이는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 스태프는 "오전 8시에 현장에 집합해 다음 날 오전 5시에 끝났다. 그런데 그날 오전 8시 50분까지 다시 집합했다"며 하루 20시간 이상 근로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또 다른 스태프도 "오전 8시 집합해 다음날 오전 2시 30분에 끝났고 다시 오전 7시 50분에 집합했다"며 근무시간과 휴식시간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2월 26일부터 3월 7일까지 진행된 브루나이 로케이션에서는 하루 근무시간이 최장 25시간이었고 연속해서 151시간 30분간 촬영을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한빛센터와 희망연대는 A·B팀 시스템도 명목상일 뿐이며 기술 스태프를 제외한 대다수의 스태프들이 A팀과 B팀을 병행하며 촬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스튜디오드래곤은 "제작가이드 정착 초기에 어려움도 있지만 주 68시간 제작 시간, B팀 운영 등을 준수하며 제작환경 개선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임하고 있다. 현재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미술 분장팀 촬영시간 등은 산정의 기준이 다르며 기타 의혹에 대해서는 근거가 부족해 서로간의 확인이 필요하다. 고용노동부의 요청 등이 있을 경우 적극 협조할 계획이며 가이드가 전 제작과정에서 잘 정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장을 전했다.
'아스달 연대기' 뿐만 아니라 KBS 2TV '닥터 프리즈너' '국민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딸' 등에 대해서도 근로기준법 위반 제보가 들어와 특별근로감독이 시행됐다. 사용자의 갑질을 풍자하는 MBC 월화극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현장도 한빛센터와 희망연대가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10월 이한빛 PD가 드라마 제작 환경의 부당함을 알리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지 3년이 다 돼 가지만 여전히 갈길이 멀다.
이한빛 PD의 아버지인 한빛센터 이용관 이사장은 "스태프들이 즐겁고 행복한 현장에서 방송을 제작하는 그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싸우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