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면세 업계가 중국 보따리상(따이공)들에게 과도한 할인 혜택을 안기면서 '모시기' 경쟁을 벌인다. 앞에서는 "따이공은 우리도 반갑지 않다. 남는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뒤에서는 유치를 위해 과열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것이다.
11일 면세 업계에 따르면, 국내 면세 업계 1∼3위인 롯데·신라·신세계 면세점이 중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면세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선불 카드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내 시장점유율 40%가 처음으로 무너진 업계 1위 롯데면세점은 지난달부터 선불 카드를 제공하는 프로모션에 돌입했다. 지난달 서울 명동 본점에서 화장품과 패션 제품을 구매한 고객에게 구매액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 든 선불 카드를 제공한 식이다. 면세 업계는 일반적으로 중국 여행 업체에 손님을 보내 주는 대가로 구매액의 20% 안팎을 송객 수수료로 준다. 선불 카드까지 포함하면 구매액의 30%가 중국인에게 다시 흘러 나가는 셈이다.
비단 롯데만의 일이 아니다. 2∼3위 업체인 신라와 신세계 면세점도 유사한 종류의 선불 카드 행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반적으로 구매액의 약 10%에 해당하는 금액의 선불 카드를 주고 있으나 일부 화장품 프로모션의 경우 구매액의 20%에 가까운 금액이다.
지난해 국내 면세점 매출은 사상 최대인 18조9600억원으로 집계됐다. 면세 업계는 이 가운데 60% 이상을 중국 보따리상 비중으로 본다. 국내 면세 업계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1∼2월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하며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정작 실속은 중국이 챙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국내 면세 업계는 이런 보따리상을 '필요악'으로 본다. 과거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따이공을 두고 "우리도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각종 할인 혜택 때문"이라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따이공이 사들인 면세 물건이 국내에 유통, 소매시장의 물을 흐린다는 데 있다. 이니스프리·더페이스샵·아리따움·토니모리·네이처리퍼블릭 가맹점주들로 구성된 전국화장품가맹점연합회(이하 '화가연')는 최근 관세청에 '면세 화장품 불법 유통'을 잡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화가연 측은 중국인 유학생 및 관광객을 모집해 화장품을 구매하게 한 뒤 이를 다시 매입하는 방식으로 국내에 유통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매입한 면세품은 화곡동 화장품 도매시장이나 명동 '깔세(보증금 없이 1년치 월세를 한꺼번에 내는 임대차 계약)' 매장 등을 통해 국내에 유통된다는 것이다.
면세 화장품이 해외로 나가지 않고 국내로 유출되는 것은 불법이다. 화가연 측은 "면세품에는 주류 등과 같이 '면세'라고 적시할 필요가 있다. 뗄 수 있는 스티커나 스탬프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내 면세점에서 구매한 면세품을 출국장이 아닌 현장에서 바로 받을 수 있는 현장인도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 면세 업계 관계자는 "중국 보따리상 유치를 위한 과열 경쟁으로 국내 면세 업계 전체가 손해를 보고, 결국 국부가 중국으로 유출되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