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사진을 옮겨 놓은 듯, 신기한 것투성이다. 모르고 보면 그저 뾰족하게 깨진 돌멩인데, 알고 보니 선사 시대에 사용하던 ‘주먹도끼’란다. 지금의 인간 이전 모습의 인류가 도구를 사용해 사냥했다는, 모형이 아닌 진짜 매머드의 뼛조각은 진짜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다.
눈앞의 구석기 시대라니. 정말 ‘아는 만큼 보이는’ 연천 여행이다.
전곡리에서 ‘구석기’ 속으로
전곡리 선사 유적의 시작은 1978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한탄강 주변에서 구석기 시대 ‘주먹도끼’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진 것이 시초다.
이듬해부터 발굴 조사를 시작해 20여 년 동안 주먹도끼·사냥돌·주먹찌르개·긁개·홈날·찌르개 등 다양한 유물 8000여 점이 출토됐다. 이것들이 적어도 35만 년 전에 형성된 구석기 유적이란다.
특히 주먹도끼는 동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라고 한다. 이 주먹도끼는 세계 고고학에 큰 영향을 주며 주목받고 있다.
1970년대까지 아시아에서는 돌의 양면을 다듬어 전체 형태와 날을 만든 주먹도끼보다 찍개가 훨씬 많이 출토돼 고고학자들은 구석기인들이 인도를 기준으로 서로 다른 석기 기술을 사용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곡리에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발견하면서 지역적 이분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정표가 생긴 것이다.
‘연천’ 하면 주먹도끼였다. 전곡선사박물관에서도 주먹도끼가 맨 앞자리에서 관람객을 처음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사실 별 생각 없이 보면 그저 날카롭게 깨진 돌멩이일 뿐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돌의 양면을 떼어 날카로운 날의 모양을 생각하고 제작한 구석기인들의 생각이 담긴 도구다.
주먹도끼는 나무를 다듬는 데 사용됐을 뿐 아니라,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발라 내고 뼈를 부수는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됐다. 만능 도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주먹도끼를 구석기 시대의 ‘맥가이버칼’이라고도 부른다.
또 전곡선사박물관에서 눈을 사로잡은 것은 ‘인류 진화의 위대한 행진’이다. 600만~700만 년 전 침팬지와 비슷한 모습의 ‘투마이’부터 300만~400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에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우리가 알고 있는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인’ 등 진화하는 인류의 모습이 살아 있는 듯한 모형으로 전시돼 있다.
이들 중 아시아에 최초로 발을 디딘 인류는 바로 ‘호모 에렉투스’다. ‘똑바로 선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들은 이마가 낮고 뒷머리는 바깥쪽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눈썹뼈 부분이 툭 튀어나온 것이 특징이다. 자유로운 두 손을 이용해 주먹도끼 같은 석기를 만들어 사냥한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불을 이용해 고기를 구워 먹고, 추운 겨울을 따듯하게 지낼 수도 있었다.
특히 진화 단계별 인류와 자신의 모습을 합성시켜 자신이 선사 시대에 어떤 모습이었을지 체험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어 야외 수업을 나온 아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곳 연천 전곡리 선사 유적지와 전곡읍 일원에서는 내달 3일부터 6일까지 ‘연천 구석기 축제’도 열린다. 어느덧 27회를 맞이한 연천의 구석기 축제는 아이와 함께 방문해 한나절을 즐기고 가기 좋은 콘텐트가 가득하다. 한반도의 구석기 문화를 포함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구석기 문화를 두루 접할 수 있고, 특히 1m가 넘는 긴 꼬챙이에 꽂은 돼지고기를 참나무 숯불에 구워 먹는 ‘구석기 바비큐’는 구석기 축제의 가장 큰 즐거움일 것이다.
석기를 만들고 집을 짓고 유적지를 활보하면서 구석기 시대를 살아가는 전곡리의 ‘호모 에렉투스 전곡리안’들과 함께 찍는 인증샷도 축제의 재미다.
눈에 담는 한탄강·임진강의 신비로움
우리나라는 지구과학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이 뛰어난 지역을 보전하기 위해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하고 교육·관광에 활용하는데, 한탄강 일대가 그렇다.
‘한탄강 국가지질공원’은 총면적 1164.74㎢에 이르며, 경기도 연천과 포천·철원군 일대까지로, 재인폭포와 아우라지 베개용암·전곡리 유적 토층·임진강 주상절리·차탄천 주상절리 등 24개 소가 포함된다.
연천에서 만난 임진강 주상절리 중 동이리 주상절리는 까만 절벽이 마치 병풍처럼 강을 따라 서 있다. 제주도에서만 보던 ‘현무암’이 육각기둥의 절리 형태로 촘촘히 쌓여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이곳은 100만 년~1만 년 전 철원 북쪽에서 분출한 용암이 철원~연천 일대에 넓은 용암 대지를 형성했는데, 화산 활동이 끝난 뒤 용암 대지가 강의 침식을 받자 강을 따라 기하학적 형태의 현무암 주상절리가 만들어져 높이 40m, 길이는 1.5㎞나 된다.
다음은 두 갈래 물이 한데 모이는 ‘아우라지 베개용암’이다. ‘베개용암’은 용암이 차가운 물과 만나 빠르게 식을 때 그 표면이 둥근 베개 모양으로 굳어서 생긴 것을 말하는데, 한탄강의 두 갈래 물길을 베개용암이 가르는 경관을 볼 수 있다.
이곳 베개용암은 북한 평강 오리산에서 분출한 현무암질 용암이 한탄강 계곡을 따라 남서쪽으로 흘러내리다가 이 아우라지에서 찬물과 만나자 강물과 접촉하는 용암 표면이 급격히 식으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대개 깊은 바다에서 용암이 분출할 때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한탄강에서 발견된 것은 아주 희귀한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 절경은 재인폭포다. 재인폭포는 연천의 가장 대표적인 명소 중 하나로, 한탄강 지형이 빚은 자연의 선물이다.
이곳에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인근 마을에 금실 좋기로 소문난 광대 부부가 살았는데, 어느 날 줄을 타는 재인(才人)이었던 남편에게 마을 원님이 재인폭포에서 줄을 타라는 명을 내렸다. 광대의 아내에게 흑심을 품은 원님의 계략이었다. 줄을 타던 남편은 원님이 줄을 끊어 버리는 바람에 폭포 아래로 떨어져 숨을 거뒀다. 원님의 수청을 들게 된 아내는 원님의 코를 물어 버리고 자결했다. 그 후로 사람들은 이 마을을 ‘코문리’라 불렀고, 현재의 '고문리'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문헌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전설과는 또 다르다. 폭포 아래서 놀며 자신의 재주를 자랑하던 재인이 사람들과 내기했다. “양쪽 절벽에 외줄을 묶어 내가 능히 지나갈 수 있소.”
사람들이 믿지 못하겠다며 자신의 아내를 내기에 걸었다. 재인이 쾌재를 부르며 호기롭게 줄을 타자 아내를 빼앗기게 된 사람들이 줄을 끊어 버렸다. 흑심을 품었던 재인은 아래로 떨어져 죽었고, 그 후로 이 폭포를 ‘재인폭포’라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다.
재인폭포는 검은 현무암 주상절리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아름답기로 유명해 제주도 천지연폭포와 비견된다. 웅장한 절리의 품에 안긴 재인폭포는 높이 약 18m의 폭포수가 너비 30m, 길이 100m의 소 위로 떨어지는 장관을 연출하는데, 하얀 물줄기와 에메랄드빛 소가 빚어내는 색의 조화가 거대한 동굴처럼 파인 현무암 주상절리와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