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1선발은 1선발인 이유가 있더라고요. 5선발인 저는 최대한 잘 버티는 데 중점을 두려고요."
두산 오른손 투수 이영하(22)는 올 시즌 리그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차세대 에이스 그룹 가운데서도 단연 선두 주자로 꼽힌다. 올해 네 차례 선발 등판해 전 경기에서 퀄리티스타트를 해냈고, 그 가운데 3승을 올렸다. 평균자책점은 1.67. 팀 내에서는 외국인 에이스 조쉬 린드블럼(1.63)에 이어 두 번째로 좋고, 리그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평균자책점 5위 안에 든다.
무엇보다 공격적인 투구 내용이 가장 돋보인다. 이닝당 평균 투구 수가 13.5개로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 가운데 가장 적다. 지난 14일 잠실 LG전에서는 8이닝 동안 공 96개만 던지면서 무실점으로 막아 데뷔 이후 최고 피칭을 하기도 했다. 순서상으로만 '5선발'일 뿐, 사실상 에이스급 피칭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지난해보다 크게 나아진 건 없다. 다만 작년에는 '맞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던졌다면, 올해는 초구부터 '차라리 안타를 쳐라'는 생각으로 던지게 된다"며 "타자를 빨리빨리 상대하려다 보니 야수들의 수비 시간도 짧아지고, 결과가 좋게 나온 것 같다. 타자들이 점수를 많이 내주고 야수들이 고비 때 좋은 수비를 해 주는 운도 따랐다"고 설명했다.
모든 투수가 마인드 컨트롤을 하지만, 누구나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영하는 마음속 다짐을 실제 결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지난해에는 불펜에서 시속 150㎞에 육박하는 직구를 뿌렸지만, 풀타임 선발투수로 나서야 하는 올해는 완급 조절을 위해 구속을 줄이고 변화구 사용 비중을 늘렸다. 하지만 위기 상황이 되면 다시 구속이 시속 5㎞ 가까이 빨라진다.
이영하는 "의식적으로 세게 던지려는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다"고 웃으며 "확실히 지난해 선발과 불펜에서 경험을 쌓은 덕에 여유도 생기고 긴장도 덜 된다. 예전보다는 상대 타자와의 승부에만 집중해서 싸울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또 "내가 5선발이라 상대 팀 5선발들과 주로 맞대결하지 않았나. 애초에 상대팀 1선발을 이기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며 "다만 상대팀에서도 5선발이 나온다면 지고 싶지 않다. 모두 이기겠다"고 강조했다.
쾌조의 스타트. 이 기세를 계속 이어 완벽하게 시즌을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이영하는 첫 네 경기 성적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스스로의 구위를 믿고 자신 있게 던지되, 초반 성적에 들떠 무리한 목표를 세우지는 않겠다는 의지다.
그는 "올해 목표는 규정 이닝(144이닝)을 채우는 것과 지난 2년간 실패한 4점대 평균자책점 진입이다. 아직 시즌 초반이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고, 끝까지 잘하는 게 중요하다"며 "시즌이 끝날 때 보면 1선발은 1선발인 이유가 있고, 5선발은 5선발인 이유가 있더라. 나도 언젠가는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있지만, 그 시기가 최대한 늦게 왔으면 좋겠다"고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