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는 시범경기 개막전인 3월 12일 LG전에서 파격적인 타순을 내놓았다. 바로 2번 타자 박병호다. 하지만 정규시즌에선 여러 이유로 ‘2번 박병호’를 포기했다. 그래도 프로야구에서 ‘강한 2번’은 분명한 트렌드다. ‘작전 수행 능력’보다 ‘멀리 잘 치는 타자’가 2번에 포진한다.
전통적인 야구 이론에서 2번 타자 역할은 1번 타자 진루를 돕는 것이다. 그래서 콘택트 능력이 좋아 치고 달리기 등 작전을 잘 소화하거나, 번트를 잘 대는 타자가 2번에 주로 기용됐다. 병살타를 당할 확률이 낮은 왼손 타자도 자주 2번을 쳤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힘 있고, 타율 높은 타자가 3번이나 5번 대신, 2번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 사례가 올 시즌 KBO리그 최고 타자 두산 호세 페르난데스다. 페르난데스는 타율(0.397)·홈런(7개)·타점(32개)·출루율(0.464) 등 4개 부문 1위다. 두산은 선구안 좋은 페르난데스에게 2번을 맡겨 공격력을 극대화했다. 지난해에도 두산은 비슷한 전략을 사용했다. 타율 0.333, 22홈런의 최주환이 2번에 가장 많이 기용됐다. SK도 거포 한동민을 2번에 배치해 재미를 봤다.
‘2번 박병호’ 전략을 포기한 키움도 강한 2번을 쓰고는 있다. 3~5번 클린업트리오였던 김하성이 2번으로 나섰다. 김하성은 지난해 단 한 번도 2번으로 나온 적이 없다. 장정석 키움 감독이 2번에 강한 타자를 쓰는 이유로 “더 많은 타격 기회”를 거론했다. 장 감독은 “시뮬레이션 결과 한 시즌에 2번이 4번보다 40타석 정도 더 들어선다”고 설명했다.
대니얼 김 해설위원은 “미국도 4, 5년 전부터 2번 타자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효율적인 득점을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세이버메트릭스(야구를 수학·통계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MLB에선 마이크 트라우트(LA 에인절스), 크리스티안 옐리치(밀워키 브루어스), 폴 골드슈미트(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 강타자가 2번을 맡는 경우가 많다. 3~5번 타자를 아예 2~4번으로 앞당기는 것도 요즘 추세다. 기록상으로도 확연히 달라졌다. 10년 전인 2009시즌, 2번 타자 평균 타율은 0.289로 리그 평균(0.295)에 못 미쳤다. 타순별 타격 순위에서는 9타자 중 6위였다. OPS(장타율+출루율)도 0.793으로 6번 타자(0.816)보다 낮았다. 7~9번 하위 타선보다 나은 선수일 경우 2번에 기용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2019시즌 2번 타자 타율(0.291)은 4번(0.293) 다음으로 높다. OPS(0.831) 역시 2위다. 팀 내에서 첫 번째 혹은 두 번째로 좋은 타자를 배치할 만큼 감독 등도 2번 타자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