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어디] 순천, 빼놓지 말아야 할 세 가지
“순천에 가면 흑두루미 보고 오세요.”
순천 여행을 이야기하자 지인이 단박에 흑두루미 이야기를 꺼냈다. 흑두루미는 해마다 2~3월이면 남해 순천만을 중간 기착지로 삼아 북상한다.
이미 4월이라 순천에서 흑두루미를 볼 수는 없었다. 몸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은 흑두루미 7마리만 논에서 이따금 발견된다고 했다.
3000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다녀가는, 세계 5대 연안 습지 순천만은 빽빽한 갈대밭과 끝이 보이지 않은 광활한 갯벌 생태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아 주고 있었다.
전체가 하나의 ‘정원’, 순천시
사실 순천 하면, 가장 먼저 ‘정원’이 떠올랐다. 순천만과 함께 동천~봉화산 둘레길로 이어져 도시 전체가 하나의 큰 정원을 이루는 순천시의 대표 관광지 ‘순천만 국가정원’ 때문이다.
111만m² 면적의 순천만 국가정원은 각종 화초 500만 본과 수목 88만 그루가 심겨 있다고 했다. 지난달 25일 찾은 4월 마지막 주 정원은 지난주만 해도 만개해 거리를 수놓던 형형색색의 툴립 약 20만 송이의 옷을 벗고, 다음 차례의 꽃들로 치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순천만 국가정원 해설사는 “유채는 한창이었고, 다음 달이면 철쭉과 장미꽃이 한껏 화사함을 뽐낼 예정”이라고 했다.
순천만 국가정원에는 테마별로 정원들이 나뉘어 있어 천천히 전체를 모두 돌아보려면 4시간 정도 걸린다. 세계 정원·힐링 정원·실내 정원·슬로 정원 등 테마별로 순천만 국가정원 전체를 산책하듯 돌면 시간이 훌쩍 지난다.
특히 흥미로운 곳은 세계 정원이었다. 태국·이탈리아·멕시코·영국·미국 등 나라별 특색에 맞도록 정원을 조성해 놓은 곳인데, 그 자체가 예술품이다. 정원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원이나 에스파냐의 알함브라 궁원, 한국의 비원 등을 떠올려 보면 ‘정원 예술’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탈리아 정원은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가의 빌라 정원을 재현했다. 깔끔하고 잘 정돈된 이미지의 이탈리아 정원은 계단식 설계가 특징이며, 경사진 공간에 키가 큰 나무와 작은 나무가 조화로움을 뽐낸다.
태국 정원은 국가 전통의 건축물 ‘살라타이’가 눈에 띄었다. 살라타이는 태국 사람들이 뜨거운 햇빛과 비를 피하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는 장소로 사용되는 공간이었다. 이 벽돌 빛의 건축물과 함께 서 있는 워싱턴 야자·코코스 야자 등 열대 수목은 이국적 분위기를 연출해 내기에 충분했다.
‘꿈의 다리’도 순천만 국가정원의 볼거리다. 세계 최초로 물 위에 떠 있는 미술관이자, 아시아에서는 첫 번째로 긴 지붕이 있는 인도교다. 설치미술가 강익중과 순천시민이 2013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위해 만든 공간으로, 내부에는 전 세계와 우리나라에서 모인 어린이 그림 14만여 점이 걸려 있다.
또 야생동물원에 가면 사막여우를 비롯해 알다브라육지거북·물범·홍학 등 1000여 마리의 동물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사육사 일일 체험과 생태설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야생동물원에서는 최근 사막여우가 자연분만으로 암컷 새끼 두 마리를 출산했다. 사막여우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순천만 습지’로 향했다. 갈대·갯벌·습지와 분위기가 묘하게 어울렸다. 흐릿한 하늘 아래 뿌연 풍경이 주위를 둘러쌌지만, 쨍쨍한 햇볕 아래 습지의 그림이 생각나지 않았다.
22.6㎢(690만 평)의 드넓은 습지를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갈대밭을 가로지르는 나무 데크 위에서 바다 냄새를 맡으며 걷는 방법, 다른 하나는 배를 타고 습지 위에서 날아다니는 왜가리를 카메라에 담거나 갯벌이 물에 잠기는 모습을 눈에 담는 것이다.
이날은 비가 오니 배를 타기로 했다. 왕복 35분의 ‘순천만 생태체험선’이다. 선착장에서 출발해 순천만 S 자 갯골을 돌아 다시 원점으로 복귀하는 코스다. 바닷물이 빠지면 운항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꼭 시간대를 확인해야 하며, 신분증은 필수다.
30인 승의 작은 배에 탑승하니, 바닷물에 잠겨 있는 듯한 낮은 창밖 뷰가 펼쳐졌다.
선장은 운항하며 틈틈이 망원경으로 날아다니는 새를 확인했다. 검은 새가 하늘에 보여 ‘흑두루미’냐 물으니 왜가리라고 했다. 아쉽지만 올해 순천에서 흑두루미를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순천만 습지 전경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대대포구에서 순천만 갈대 데크를 따라 용산전망대에 오르면 된다. 이곳은 이미 석양의 S 자형 수로를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진작가들의 명소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구름 낀 이날의 하늘은 낙조를 허락해 주지 않았다. 확실히 날씨 운은 여행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올해는 ‘2019 순천 방문의 해’로, 순천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위해 3월부터 순천만 국가정원·순천만 습지·낙안읍성·드라마 촬영장과 선암사와 송광사 등 순천시 주요 관광지 입장료를 관광지별로 1000~500원 할인하고 있으니 올해 순천 여행이 제격이다.
한국 불교 승맥을 잇는 ‘송광사’
순천 동부의 정원과 습지에서 출발하면 서부에 위치한 송광사까지 50여 분을 달려야 한다.
송광사는 곧 다가올 ‘부처님 오신 날’을 일찍부터 준비하는 듯 연등이 수놓고 있었다.
조계산 북서쪽 자락에 자리 잡은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인 승보종찰이다. 한국 불교에는 불교에서 귀하고 값진 세 가지 보물 불(佛) 법(法) 승(僧) 등 삼보를 가진 삼보사찰이 있는데, 경남 양산의 ‘통도사’ 경남 합천의 ‘해인사’ 그리고 전남 순천의 ‘송광사’다.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 있기 때문에 불보사찰, 해인사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의 경판이 모셔 있기 때문에 법보사찰, 그리고 송광사는 한국 불교의 승맥을 잇고 있기 때문에 승보사찰이라고 한다.
송광사는 한국 불교와 역사를 함께해 온 유서 깊은 고찰이다. 신라 말 혜린선사에 의해 창건됐으며, 보조국사 지눌을 포함한 16명의 국사가 주석했다.
특이한 점은 송광사 대웅전 앞에는 탑이 없다는 것이다. 경주 불국사 대웅전 동편을 지키는 다보탑과 서편을 지키는 석가탑을 떠올리니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박다인 전남 문화관광해설사는 “송광사 사찰 터는 연화부수형(물 위에 떠 있는 연꽃 같은 형태의 풍수)으로, 연꽃이 가라앉을까 봐 대웅전 앞에 석탑과 석등이 없다”고 설명했다.
송광사를 느릿느릿 거닌 뒤 ‘불일암’으로 올랐다. 무릇 암자란 이런 곳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한 곳에 불일암이 있다.
송광사에서 출발해 ‘무소유의 길’을 숨차도록 오르길 20~30분, 대나무가 우거진 길을 지나면 도착이다.
불일암은 법정 스님이 2010년 3월 10일 열반에 든 곳이다. 스님 유언에 따라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불일암 앞 후박나무 왼쪽 아래에 모셔 있었고, 스님이 생전에 쓰시던 세숫대야가 놓인 여름 목간도 있다.
오르막길에 거칠어진 숨을 내쉬는 이들을 위해 준비해 두는 물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무소유의 길을 다시 걸었다.
순천(전남)= 글·사진 권지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