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프로그램이 20년간 이어오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개콘' 1000회는 방송사에 남을 기록이고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기자간담회 분위기는 축하보다는 반성과 쓴소리, 앞으로 더 잘하겠다는 각오로 채워지며 다소 숙연했다.
1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누리동 쿠킹스튜디오에서 KBS 2TV '개그콘서트' 1000회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전유성·김미화·김대희·유민상·강유미·신봉선·송중근·정명훈·박영진과 원종재·박형근 PD가 참석했다.
'개그콘서트-토요일 밤의 열기'라는 파일럿을 거쳐 1999년 9월 4일 첫 방송된 '개그콘서트'는 시청자의 일요일 밤을 책임지는 국민 예능으로 20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김준호·김대희부터 김현숙·정형돈·유세윤·장동민·김숙·강유미·안영미·신봉선 등 인기 코미디언을 배출한 신인 등용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5년간 '개콘'은 하락세를 걷고 있다. 2017년부터 평균 시청률이 한 자릿수로 꺾였고 올해는 5.5%까지 떨어졌다. 시청률 하락은 지상파 방송국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현상이라 차치하더라도, 2014년 '뿜 엔터테인먼트' '끝사랑' 이후에는 이렇다할 메가 히트 코너나 유행어가 없다는 점이 가장 뼈아프다. 또 신인 등용문의 역할도 전무한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기자간담회 분위기는 1000회에 대한 축하인사보다 1001회부터 어떤 코미디를 보여줄지를 집중적으로 고민하는 자리가 됐다. 연출을 맡은 원종재 PD는 "계속 노력하고 있다. 과거에 멈춘 건 알고 있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다. 구체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아서 답답하고 함께하는 코미디언들도 힘들어하지만 1000회 이후에도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할 거라는 점만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개콘' 1회를 함께한 전유성은 "과거엔 대학로에서 검증이 끝난 무대를 방송에 올렸다. 지금은 그런 검증이 없어서 나태해지고 식상해졌다는 평가를 받는 것 같다. 현장에서 했던 친구들이 방송국에 들어와서 하면 현장에서는 분명히 웃었는데 방송국에서는 지적을 받고 그래서 관둔 친구들도 상당히 많다. 초심으로 돌아가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쓴소리했다.
코미디언들은 시청자의 인권 감수성이 점차 예민해지면서 코미디로 활용할 수 있는 소재가 점차 줄어든다는 점을 알아달라고 했다. 신봉선은 "불과 10년 전인데 그때 했던 코너는 지금 무대에 못 올린다. 그만큼 제약이 많다. 다시 복귀하면서 후배들에게 고맙다고 느꼈다. 새로운 문화를 '개콘'에 어울리게 접목하기 위해 계속 생각하고 있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만큼 자랑스럽게 내놓을 코너를 만들 수 있도록 그때 박수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후배들을 대신해 관심을 당부했다. 강유미는 "외모 비하 풍조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힘든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많이 나아졌다. 여성은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 이런 게 없어져서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개그를 펼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변화가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어 "제 유튜브 채널에서 '개콘' 아이디어 회의하는 걸 보여주거나 브이로그를 해서 '개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형근 PD는 "어떤 웃음을 줘야 할지, 지금 시청자들 원하는 웃음이 무엇인지, 어떤 웃음이 필요한지 웃음의 본질에 대해 크게 고민을 못 했다. 지금은 그 작업을 하고 있다. 그게 포맷의 변화일지 출연자의 변화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코미디의 본질, 사람을 웃긴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 부분을 1000회를 기점으로 조금 더 고민하고 있다. 더 치열하게 고민해서 구체적인 성과가 올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