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제75차 연차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항공 업계의 UN'으로 불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집행위원회(BOG) 위원으로 선출됐다. 항공 업계는 한진그룹 오너로 선보인 첫 국제 무대에서 무난하고 성공적으로 데뷔전을 치른 조 회장이 경영권을 둘러싼 내부 문제를 봉합할 수 있을지 주목한다.
부친 이어 선출된 IATA 집행위원회 위원
대한항공과 IATA는 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75회 연차총회에서 조 회장을 집행위원으로 선출했다고 밝혔다.
IATA 집행위원회는 전 세계 항공사 최고 경영자 중 전문 지식과 경륜을 바탕으로 선출된 31명의 위원과 사무총장으로 구성된다. IATA의 활동 방향을 설정하고 산하 기관의 활동을 감독하며 사무총장 선임, 연간 예산, 회원사 자격 등을 심사하고 승인하는 역할을 한다.
IATA 연차총회는 세계 120여개국, 287개 항공사 관계자들이 모이는 세계 항공 업계의 최대 행사로 한국에서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한국 항공산업의 위상이 격상됐음을 의미한다. 회원사의 최고 경영자(CEO)와 항공기 및 부품 제작사, 항공 업계 및 관광 업계 관계자 등이 참석하는 만큼 올해 서울 총회에도 1000여 명의 항공 업계 ‘파워 피플’들이 대거 참석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IATA 서울 연차총회가 전 세계 항공 업계의 트렌드를 바꾸는 계기이자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으로 바라본다.
원래 이번 총회의 의장은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맡을 예정이었다. 조양호 전 회장은 생전 IATA 집행위원회 위원을 8번 연임했다. 그러나 지난 4월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아들인 조원태 회장이 자리를 잇게 됐다. 이날 총회 시작에 앞서 IATA 회원사 관계자들과 주요 참석자들은 조양호 전 회장을 추모했다.
조 회장은 "이번 총회가 항공 업계의 기회가 어디 있는지, 위기를 어떻게 하면 풀어낼 수 있는 지를 찾는 시간이 돼야 한다"며 "항공 업계가 발견한 기회와 가능성들이 인류의 더 나은 미래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IATA 연차총회 개최로 대한민국 서울은 '세계 항공산업의 수도’로 탈바꿈하게 됐다'며 "조 회장이 부친의 뒤를 이어 세계 항공 업계를 이끌어 가는 IATA의 핵심 위원으로 선임됨에 따라 앞으로 전문적 식견과 경험을 토대로 전 세계 항공산업의 발전에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내부 경영권 갈등 불씨는 여전
조 회장의 국제 무대 데뷔는 성공적이었으나 내부 경영권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한진칼의 2대 주주인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강성부펀드)의 경영권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 KCGI는 지난달 28일에도 한진칼 지분율 1%포인트를 추가 매입하며 지분율을 15.98%로 늘렸다. 한진칼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것은 조양호 전 회장 일가 및 특수관계인으로 지분율은 28.95%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공격적으로 지분을 사들이고 있는 KCGI는 최근 6개월 사이 지분 8%를 매입하는 등 오너 일가의 위치를 흔들고 있다. 일부에서는 KCGI가 한진칼 지분을 추가 매입해 적대적 M&A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흘러나온다.
부친이 남긴 상속과 관련한 삼남매와 이명희 일우재단 전 이사장과 얽힌 실타래도 풀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15일 ‘2019년도 대기업집단 현황’을 발표하면서 직권으로 조 회장을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했다. 조양호 전 회장 별세 이후 내부적 의사 합치가 이뤄지지 않아 기한 내 관련 자료(동일인 변경 등)를 제출하지 못한 까닭이다. 업계에서 오너 일가의 불화설이 흘러나오는 배경이다.
현재 오너 일가 삼남매의 지분율은 각각 2.30~2.34% 남짓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상속비율대로 지분이 돌아가면 조양호 전 회장의 아내인 이명희 일우재단 전 이사장이 약 5.95%를, 삼남매가 각각 약 3.96%를 확보하게 된다. 만일 삼남매 간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면 KCGI에게 한진그룹 경영권을 뺏길 수도 있는 상황이다.
예정대로 상속이 이뤄져도 최대 3000억원에 이를 수 있는 세금이 부담스럽다. 세금 마련을 위해 상속 지분의 일부를 내놓는 방법도 거론되지만, 2대 주주인 KCGI의 기세가 무섭다.
업계 관계자는 "KCGI가 별세한 조 전 회장의 병세를 미리 파악하고 공격적인 지분 매입을 했다는 말이 돈다. 강성부펀드 측이 오너 일가 삼남매가 결국 여러 사정으로 경영권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까지 예상하고 M&A를 준비한다는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