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볼 경고등이 켜졌다. 메이저리그(MLB)에서 파울 타구에 맞아 관중이 다치는 사고가 속출했다. 국내 야구장도 안전 문제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8월, 린다 골드블룸은 79번째 생일 및 59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아 남편과 다저스타디움을 찾았다.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날 경기는 골드블룸 가족에게 끔찍한 상처를 남겼다. 9회 초 관중석으로 날아든 시속 93마일(약 150㎞)짜리 파울볼에 린다는 얼굴 오른쪽을 맞았다. 1루 쪽 관중석 파울 그물 바깥쪽에 앉아있다가 맞았다. 병원으로 후송된 린다는 급성 두개 내출혈로 사망했다.
지난달 휴스턴 애스트로스 홈구장인 미닛 메이드 파크에서 열린 휴스턴과 시카고 컵스 경기에선 알모라 주니어의 파울 타구에 4세 소녀가 맞는 사고가 발생했다. 주니어는 돌발 사고에 놀라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지난 24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다저스와 콜로라도 로키스 경기에서도 1루 쪽 관중석의 한 여성 팬이 코디 벨린저의 파울 타구에 얼굴을 맞아 병원으로 옮겨졌다.
MLB는 파울 안전망 설치가 미비하다. 외야 파울폴까지 안전망이 설치된 한국·일본과 달리 내야 일부에만 안전망이 있다. 높이도 한국·일본보다 낮다. 미국 CNN은 지난 1일 “파울볼로 인해 다치는 관중이 매년 1750명가량 된다. 타자가 사구를 맞는 것보다 관중이 파울볼에 맞는 일이 더 흔하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MLB 사무국은 관중의 시야 확보를 내세워 내야 안전망을 늘리는데 부정적이다. 관중 스스로 경기에 집중하면서 피하거나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포츠 전문 매체 ESPN 설문조사에 따르면 “파울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는 팬의 비율은 78%에 이른다. 선수들도 안전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저스 투수 리치 힐은 메이저리그 선수협회에 전화를 걸어 “팬의 안전을 위해 안전망 설치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힐은 “생명을 지키기 위한 투자다. 차를 탈 때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것처럼, 안전망도 더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는 “팬의 안전을 위해 계속 논의 중이지만, 올 시즌 중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각 구단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워싱턴 내셔널스가 이미 안전망 설치 구역을 넓혔다. 다저스도 고려 중이다.
한국 야구장은 미국보다 안전한 편이다. KBO리그는 초창기부터 사고 방지를 위해 안전망을 폭넓게 둘러쳤다. 시야 확보를 위해 전보다 안전망 높이가 낮아졌어도 내야 전 구역을 커버한다.
지난해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이동섭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5~17년 프로야구 9개 야구장에서 발생한 사고는 총 590건이었다. 그중 511건이 관중이 파울볼이나 홈런볼 등에 맞은 타구 관련 사고였다. 연평균 170건이다. MLB의 파울볼 부상 사고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KBO리그에서는 대신 낙후된 경기장 시설로 인해 선수가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25일 부산 롯데-KT 전에선 KT 우익수 강백호가 수비 도중 손을 다쳤다. 전력 질주해 파울 타구를 잡은 뒤, 몸을 가누지 못해 글러브를 끼지 않은 오른손을 그물 쪽으로 뻗었다가 뾰족하게 나온 구조물에 다쳤다. 강백호는 26일 서울 중앙대 병원에서 봉합 수술을 받았다. 치료에는 4주 정도가 소요되고, 복귀까지는 최대 8주까지 걸릴 것으로 보인다.
롯데는 경기 후 곧바로 시설을 보수했다. 구단은 26일 강백호의 부상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 뒤 “구장 전체에 대한 안전점검을 진행, 향후 사고를 예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직구장 자체가 문제다. 1986년 개장한 사직구장은 노후가 심각하다. 비가 오면 누수와 악취 현상이 심각하다. 신축 또는 리모델링이 절실하지만, 부산시가 손 놓고 있다. 선거마다 여야 후보들이 새 구장 건설을 공약했지만, 움직임이 없다. 오거돈 현 부산시장도 마찬가지다.
현행법상 야구장은 구단이나 기업이 소유할 수 없다. 지자체 또는 산하 시설공단이 관리한다. 안전이나 편의에 대한 인식 수준이 얕다. 사직구장의 경우에도 근래 몇 년간 전광판, 조명탑, 그라운드, 클럽하우스, 관중석 등을 개보수했다. 하지만 부산시가 먼저 나선 적이 없다. 롯데 구단이 돈을 들여 개보수한 뒤, 부산시에 내야 하는 임대료에서 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