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호(38·KIA)는 지난달 19일 광주 SK전에 앞서 은퇴를 발표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눈물은 은퇴식, 그때 한 번만 흘리겠다. 그날 진짜 나의 마지막 인사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지난 13일 열린 은퇴식, 이범호는 수차례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행복하게 그라운드를 떠날 수 있었다.
이범호의 은퇴식은 13일 광주에서 열린 친정팀 한화와 경기에서 진행됐다. 2만500명의 만원 관중이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꽉 들어찼다. 이번 시즌에 종전 KIA의 홈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의 매진 사례는 3월 23일 LG와 공식 개막전 단 한 차례뿐이었으니, 이범호는 13일 화려한 축복 속에 유니폼을 벗게 됐다. 그는 "은퇴를 결정한 뒤 가장 걱정한 부분은 '은퇴식 그라운드에 팬들이 가득 찾아 주지 않으면 어떡하나'였다. 떠나는 제게 박수를 보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은퇴식이 열린 것부터 큰 의미가 있었다. KBO 리그 출범 이후 가장 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타이거즈는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했다. 그 가운데 이강철과 김종국·이종범·서재응·최희섭·김상훈·유동훈 등 프랜차이즈 선수에게만 은퇴식 영예가 주어졌다.
이범호는 KIA의 프랜차이즈 출신은 아니다. 대구고를 졸업하고 2000년 2차 1라운드 8순위로 한화에 지명돼 입단했다. 2010년 일본 소프트뱅크로 건너간 그는 KBO 리그 복귀를 결정하면서 KIA와 계약, 2011년부터 올해까지 9년간 몸담았다. KIA는 그동안 이범호가 팀에 공헌한 점을 높이 사 은퇴식 개최를 결정했다. 이범호는 "사실 다른 팀(한화·소프트뱅크)에서 10년 넘게 활약했는데 은퇴식을 열어 줘 사장님과 단장님 및 구단에 너무나 감사하다. 내 야구 인생이 행복했다고 자부하며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더불어 KIA 구단은 떠나는 그의 대기록 달성을 배려했다. 지난 4일 1군 엔트리에 등록된 이범호는 11일 삼성전에서 역대 13번째 2000경기 출장을 달성했고, 14일 한화전은 그의 마지막 2001번째 경기였다.
이날 6번 타자 3루수로 선발 출장한 그는 '만루의 사나이'답게 마지막 타석이 극적으로 찾아왔다. KIA가 0-7로 뒤지던 5회 1사 이후 5연속 안타로 3-7까지 따라붙었다. 4번 타자 최형우는 삼진. 이어 2사 1·2루에서 안치홍의 내야 땅볼 때 상대 유격수의 야수 선택으로 만루 찬스가 찾아왔다. 한화에서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으나 번복되지 않아 KIA의 공격이 계속됐고, 이에 다음 타자 이범호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KBO 리그 통산 최다 만루홈런 1위(17개)의 주인공. 팬들은 전보다 더욱 뜨겁게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이범호는 배트에 공을 잘 맞췄다. 아쉽게도 좌익수 정면으로 향해 아웃으로 물러났다. 이범호는 "만루 타석 때 환호성이 너무 커 진심으로 큰 감동을 받았다"고 고마워했다.
6회초 수비 시작과 동시에 이범호는 박찬호로 교체됐다. 하지만 그라운드로 나와 모자를 벗어 3루 측 홈 팬들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아 인사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간 그는 동료들과 포옹하며 눈물을 한참 동안 글썽였다. 통산 성적은 2001경기에서 타율 0.271·329홈런·1127타점. 개인 통산 최다 홈런 5위. 제1·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멤버로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KIA 선수단 전원은 '25번 이범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한마음으로 뛰었다. 경기 종료 이후 이범호는 자신의 포지션에서 배턴을 넘겨받아 주전 3루수로 활약 중인 박찬호에게 등번호 25를 전달했다. 박찬호의 종전 등번호는 4번이었다. 이범호는 경기 종료 이후 만루 타석 퍼포먼스에서 세 번째 만에 타구를 담장 너머로 날리고 환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돌았다.
이범호는 불이 다 꺼진 그라운드 중간에 서서 10분 동안 이어진 고별사 내내 눈물을 글썽였다. 특별히 준비하진 않았지만 고마운 사람의 이름을 모두 언급하며 진심이 묻어나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친구(김주찬)야, 먼저 놔두고 가서 미안하네, 말동무 지완, 에이스 현종, 최고의 키스톤콤비 안치홍-김선빈, (트레이드로 떠난) 명기 모두 미안하고 고맙다. 팔이 아픈 윤석민도 와 있는데 (지금 밖에 나오지 않고) 라커 룸에 있어 마음이 아프다. 윤석민이 부활할 수 있도록 많은 응원을 부탁드리겠다."
이범호는 "2017년 11월 11일, 내 평생 첫 번째 우승을 평생 기억하면서 살아가겠다"고 했다. 또 "한화팬들에게 우승을 안겨 주지 못하고 팀을 떠나 너무나 죄송하다. 한화가 우승하기를 간절히 기도하겠다"고 인사를 잊지 않았다.
이범호는 "열심히 살겠다. 돌아와서 KIA가 우승하는 데 많은 보탬이 되겠다"며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또 팬들에게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