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이 힘을 모아 가해자의 죄를 물을 의지는 없다. 피해자들은 왜 가해자의 행태를 막지 못했냐며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서로를 비난하며 가해자의 죄를 뒤집어 쓸 희생양을 찾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런 일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일명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노쇼 사태'로 인해 일어난 일이다. 지난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하나원큐 팀 K리그와 이탈리아의 유벤투스가 친선경기를 치렀다. 세계적인 '슈퍼스타' 호날두가 출전한다는 기대감에 6만3000명의 구름관중이 몰렸다.
하지만 기대는 좌절과 분노로 바뀌었다. 유벤투스는 오후 8시인 킥오프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해 경기는 50분 지연됐다. 결정적 장면은 '45분 이상 출전' 하겠다던 호날두가 그라운드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대사기극'이었다.
이런 '대사기극'으로 인해 많은 피해자들이 생겼다. 최고 40만원을 비롯해 비싼 티켓값을 지불하며 그라운드에 온 축구 팬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K리그와 한국프로축구연맹(축구연맹)도 피해자다. 넓게는 한국 축구 전체가 무시당한 일이다. 이 경기를 주최한 더페스타 역시 피해자다.
가해자는 소수다. 유벤투스다. 그중 핵심은 호날두다.
호날두는 오만한 자세로 K리그와 한국 축구 그리고 한국 축구 팬들을 무시하고 기만했다. 분명 '45분 이상 출전 계약'을 알고 있었지만 이행하지 않았다. 피곤하다는 이유인 것으로 보고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들어올 때부터 보였던 귀걸이가 말해주고 있다. 호날두는 경기에 뛸 생각이 없었다고. 게다가 사인회까지 나서지 않았다. 팔과 손목 부상이 염려됐나보다. 중국에서 풀타임, 모든 행사에 모드 참여하는 열성을 보였지만 한국에서는 짜증섞인 얼굴로 '호구주의보'를 발령하는데 모든 힘을 쏟았다.
유벤투스에서도 '슈퍼스타' 호날두의 거만함을 제어할 수 있는 인물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그렇게 당당하게 교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계약을 어겼으니 위약금을 내면 그만이다.
이렇게 한국 축구를 기만하며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건 호날두와 유벤투스다. 그런데 책임 공방은 피해자들끼리 치열하게 하고 있다. 피해를 당한 축구 팬들은 또 다른 피해자 축구연맹과 더페스타를 겨냥하고 있다.
축구연맹을 희생양으로 모는 주장은 '무리한 일정을 승인했다'와 '생소한 업체인 더페스타를 믿고 함께 했다'는 것이다. 알려진대로 축구연맹이 26일이 아니면 안 된다고 고수했다. 27일은 K리그2(2부리그) 경기가 열리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로 인해 유벤투스가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앞뒤가 바뀐 주장이다. 축구연맹의 당연한 처사다. 이벤트 경기를 위해 K리그 경기를 희생시킨다면 이는 진정 비판받아야 할 행태다. 이는 축구연맹 스스로가 K리그를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다. 트집잡기에 불과하다.
생소한 업체 더페스타와 연계. 축구연맹도 더페스타와 처음 일을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가능성만 가지고 접촉을 했다면 축구연맹은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페스타는 유벤투스와 직접 맺은 계약서를 가지고 왔다. 호날두 출전 시간이 포함된 계약서였다. 축구연맹은 계약서를 믿고 함께 한 것이다.
또 유벤투스 관계자가 직접 축구연맹으로 찾아와 설명까지 했다. 축구연맹 입장에서는 업체의 규모와 역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계약서였다.
더페스타는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그들은 피해자다. 정당한 계약을 성사했지만 상대가 일방적으로 그 어떤 논의도 없이 계약을 파기했다. 유벤투스의 100% 잘못이다. 그런데 왜 오만한 유벤투스의 갑질을 막지 못했냐며 화살의 방향을 그들에게 돌렸다. 상대를 무시한 채 행하는 갑질은 막을 방법이 없다.
유벤투스에 먼저 죄를 물어야 한다. 그들은 즐거운 휴가를 떠났다. 한국의 이 사태에 관심도 없다. 위약금은 타격을 주지도 못한다. 호날두와 유벤투스에 죄를 물을 방법은 없고, 분노는 치민다. 분노를 풀 수 있는 희생양을 찾고 있는 꼴이다.
지금 가장 우선시 되야할 것은 유벤투스에 타격을 줄 수 있을 만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들의 사과를 받아내야 할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축구 팬, 축구연맹, 더페스타까지 모든 피해자들의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호날두와 유벤투스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물론 축구연맹과 더페스타도 책임질 부분이 있다. 같은 피해자들이기는 하지만 피해의 농도가 다르다. 처한 상황도 다르다. 더 큰 피해를 본 이들, 축구 팬들이 아파한다.
피해자라고 해서 마냥 억울한 표정만 짓고 있으면 안 될 일이다. 그들이 관여한 일이다. 그들이 한국 축구 팬들에게 소개한 일이다. 금전적 이득도 얻었다. 그들을 믿고 티켓을 사고, 호날두를 기다렸던 축구 팬들의 상처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축구연맹은 또 다시 (사실상) K리그 올스타전을 들러리로 전락시킨 점에 반성하고, K리그 스스로 경쟁력과 흥행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제시해야 한다. 더 이상 유명팀들과 친선전에 대한 기대감은 없다.
더페스타는 할 일이 더 많다. 솔직히 무능력했다. 대처 능력은 아마추어같았다. 유벤투스가 늦은 이유, 호날두가 결장한 이유를 주최측이 정확히 모른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 제대로 체크도 하지 못했고, 유벤투스와 소통도 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유벤투스에 사기를 당했다. 경험과 준비성이 부족했던 결과다.
이제 그들이 아마추어적 행정을 넘고 확실히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불법 베팅 광고와 부실한 부페 등 논란이 일어난 일에 대해 반드시 팬들에게 해명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일은 호날두에 속아 경기장에 방문한 팬들에 대한 보상이다. 금전적 책임과 도의적 책임 모두 진심을 다해야 한다.
더페스타는 분명 45분 이상 출전을 내걸고 홍보를 했고, 티켓 6만3000장을 팔았다. 이는 분명 호날두 출전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됐다. 보상 해결에 있어서는 더페스타의 프로다운 모습을 기대한다.
비난의 화살이 난무하는 호날두 사태. 하지만 호날두 덕분에 평화가 찾아온 곳도 있다.
경기 막판 많은 축구 팬들은 "메시"를 외쳤다. 한국에서 호날두의 엄청난 활약상으로 인해 한국에서만큼은 '호날두의 시대'가 끝났다. '슈퍼스타' 호날두의 새로운 역사다.
고로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의 격돌인 '메호대전'도 종말을 선언했다. 해외축구 팬들에게 더 이상 '누가 더 위대한 선수인가'에 대한 전쟁은 없다. 한 마음 한 뜻이 됐다. 종전이다. 평화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