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토일극 '호텔 델루나' 연출을 맡은 오충환 PD는 제작발표회에서 "홍자매 작가와 여주인공 캐릭터를 보고 이지은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지은이 아니면 하지 말자'는 얘기도 했다. 시놉시스도 절박하게 전달했다. 장만월의 다양한 이미지가 이지은에게 있었다"며 이지은에 대한 강한 믿음을 드러냈다.
이 믿음은 성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호텔 델루나'는 지난 28일 방송에서 시청률 8.7%(닐슨 코리아, 전국 유료플랫폼 가입 가구 기준)로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tvN 토일극이 8%대 시청률을 기록한 건 지난 1월 종영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이후 처음이다.
이지은은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은 '나의 아저씨'와는 180도 다른 역할을 맡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삶을 버텨내는 이지안에서, 화려하고 사치스럽고 괴팍하고 까칠하지만 어딘가 쓸쓸한 분위기를 풍기는 장만월로 변신했다. 화려한 스타일링 때문에 '그냥 아이유 같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고, '발음이 아쉽다'는 일부 의견도 있었지만 점차 오충환 PD와 홍자매 작가의 확신이 공감을 얻고 있다.
1000년을 넘게 살았지만 외모는 늙지 않는다는 설정 때문에 이지은은 다양한 연령대의 성격을 갖고 있다. 때론 20대 같기도 하고 어떨 땐 세상을 통달한 노인 같기도 하다.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 김준현을 보기 위해 이 악물고 달려가고, 여진구(구찬성)가 여자친구를 만난다는 말에 숨김없이 질투심을 드러낸다. 때로는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죽음과 이별을 얘기하고 여진구를 향해 애틋한 마음을 고백한다.
또 코믹 연기도 능수능란하다. 사극 '여인천하'의 유행어 "뭬야?"를 차지게 소화하는가 하면, 다 알면서 질문하는 여진구에게 툴툴거리며 "느이 하바드에서는 그렇게 가르치디?(너희 하버드에서는 그렇게 가르치니?)"라며 연륜이 느껴지는 말투를 사용하는 등 '호텔 델루나'의 웃음 포인트를 담당하고 있다. 화려하지만 쓸쓸하고 괴팍하지만 짠한,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성격과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이지은이 동일한 연령대 연예인들을 놓고 봤을 때 범접할 수 없는 스타성을 갖고 있다. 실력이며 팬덤, 화제성 모두 겸비했고, '호텔 델루나'는 이지은이 나오는 것 자체가 화제가 됐다. 그래서 이지은이 고사하면 제작을 엎으려고 했다는 게 그냥 주연배우를 띄워주기 위해 의례적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방송을 보니 과장이 아니더라"고 밝혔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장만월은 죽지 못하고 귀신을 치유하는 역할이다. 그야말로 한을 품을 수밖에 없는 인물인데 그런 한을 권선징악을 하는 데 쓰는, 선과 악이 교묘하게 섞여 있는 캐릭터다. 그런 캐릭터를 20대 배우 중 누가 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이지은이 '페르소나'나 '나의 아저씨'에서 보여준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연기가 떠올랐을 것이다. '호텔 델루나'는 '주군의 태양' '화유기' 등의 자기 복제가 될 수 있었지만, 소지섭·차승원이 아닌 이지은이기 때문에 다층적인 해석이 생겼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