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사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답 없이 이어지고 있는 '호날두 노쇼' 논란에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답답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연맹은 지난달 29일 유벤투스(이탈리아)에 항의 공문을 보냈다. 지난달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팀 K리그'와 유벤투스의 친선경기에서 벌어진 호날두 노쇼 사태와 경기 지연, 팬 미팅 취소 등 여러 가지 계약 위반에 대해 공식적으로 항의하는 내용을 담은 공문이었다. 공문을 보낸 다음날 김진형 연맹 홍보팀장이 브리핑을 갖고 "팬들이 받은 배신감과 상처를 고려해 유벤투스 쪽에 공문을 보내고 내용을 전했다"고 설명하며 "성의있는 답변을 기다린다"고 밝힌 바 있다.
연맹이 바란 답변은 분명했다. '한국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구단 차원에서 주의를 기울이겠다' 정도의, 의례적이고 통상적일지언정 진심이 담긴 사과문을 기대했다. 현실적으로 유벤투스와 법률적인 절차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사건도 아닐 뿐더러, 감정적인 부분이 얽힌 문제라 사과와 용서, 이해로 풀어나갈 수 밖에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유벤투스가 사과하고, 연맹이 받아들이면 일단 표면적인 봉합은 가능했다.
답변은 그 이튿날인 지난달 31일 저녁 도착했다. 그러나 연맹이 기다렸던 대답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날아들었다. 항의 공문에 대해 유벤투스가 보낸 답신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우선 유벤투스는 경기장에 모인 수많은 관중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정도의 좋은 경기를 선보였고, 경기장에 늦게 도착한 것은 항공기 도착 지연과 교통체증 등 외부적인 사유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팬미팅 행사에도 유명 선수들이 참가하였으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경우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의무진의 의견에 따라 경기에 참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계약 위반으로 주장되는 사항들에 대해서는 구단 법무팀이 대응할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잘못한 것이 없으니 사과할 것도 없다는 태도다. 항의 공문을 통해 입장을 밝히고 사과를 촉구했던 연맹으로선 기가 찰 노릇이다. 연맹은 즉각 입장문을 발표하고 "이번 사태의 핵심은 유벤투스가 계약사항으로 호날두의 45분 이상 출전을 보장했음에도 실제로는 단 1분도 출전하지 않은 점에 있다. 그러나 유벤투스의 이번 답신에는 이에 대한 사과는 단 한 마디도 포함되지 않았고 일언반구의 설명도 없었다"며 "선수단이 경기장에 1시간이나 늦게 도착한 점, 경기 시간을 전후반 각각 40분으로 줄이자는 터무니없고 모욕적인 요구를 한 점 등에 대한 사과 역시 없었다. 유벤투스의 이러한 후안무치함에 대하여 매우 큰 실망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규탄했다. 또한 "호날두의 불출전을 비롯한 자신들의 귀책사유로 인해 벌어진 작금의 사태를 경시하고 우리나라를 무시하는 모습"이라며 "유벤투스의 태도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명백히 밝히며, 유벤투스 구단의 책임있는 사과, 그리고 호날두의 불출전 사유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즉각적으로 입장문을 발표하긴 했으나, 유벤투스에서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더페스타의 로빈 장 대표는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유벤투스 측에서 미안해하고 있으며 사과를 위해 방한할 예정"이라고 전했으나, 연맹이 받은 답신에서 미안해하는 태도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연맹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사실상 거의 없다는 점이다. 연맹은 더페스타와 계약을 맺은 것이며, 법률적으로 더페스타에 이번 친선경기 계약 위반 사항에 대한 위약금을 산정, 청구하는 것 외에 손쓸 도리가 없다.
일단 연맹은 1일 "친선경기 주최사인 더페스타에 위약금을 청구하는 내용과 산정 명세를 담은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밝혔다. 정확한 항목과 청구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으나 위약금 규모는 2억원 이상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위약금과 별개로, 이번 사태를 야기한 주최사인 더페스타는 이렇다 할 움직임 없이 연맹의 뒤에 숨어있는 모습이다. 김 팀장은 "우리 쪽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다했다. 향후 사태가 흘러가는 추이를 지켜보면서 후속 조치를 고민해야할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결과적으로 이래저래, 연맹만 답답해지는 상황에 처했다. 프로축구를 홍보하기 위해 응했던 친선경기가 '호날두 노쇼'로 불거진 유벤투스와 대립에 초점이 맞춰진 탓에 정작 K리그가 묻히고 있다는 점이 특히 속이 쓰리다. 김 팀장은 "주중 23라운드도 재미있는 경기가 많았고, 주말에도 K리그가 열린다. 모두들 열심히 하고 있는데 화제가 너무 유벤투스 쪽에 집중되고 있다"며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