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 팬들은 그를 '철인'이라고 부른다. 2009년 K리그1(1부리그)에 데뷔한 권순형은 올해로 11시즌째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강원FC에서 뛰던 신인 시절 꽃미남으로 여고생들에게 팬레터를 받던 그는 현재 팀 최고참이 됐다. 권순형은 3일 리그 23라운드 울산전에서 통산 295번째 K리그 경기에 나선다. 매 경기가 끝난 뒤 얼굴은 땀 범벅이 되고 다리에 얼음팩을 덧대야 안정된다. 1982년 출범한 K리그 역사에서 300경기를 달성한 선수는 64명(1일 기준)뿐이다.
쉴 새 없이 달려온 그의 열정은 기록이 증명한다. 올 시즌 총 620개(19경기) 패스를 뿌린 그는 K리그1 최다 패스 부문 6위(22라운드 기준)에 올라있다. 효율성을 따지만 현재 순위 이상이다. 5위 고요한(서울)은 경기당 평균 28.3개(22경기)의 패스를 했는데, 권순형의 평균 기록은 32.6개다. 현역 시절 통산 437경기를 뛴 현영민 JTBC해설위원은 "미드필더가 패스를 많이 하는 것은 그만큼 중원에서 움직임 많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300경기는 보통 10년간 꾸준히 뛰어야 달성할 수 있는 대단한 기록"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제주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권순형은 체력의 비결을 묻자 "보양식을 챙겨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대한 잘 쉬려고 노력한다"며 "자유 시간에도 외출을 하기보다는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컨디션 끌어올리기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을 생각하면 절로 이를 악물고 버티게 된다"고 했다. 잠원초 4학년 때 처음 축구화를 신은 권순형은 부모님의 응원 속에 프로 선수를 꿈꿨다. 2013년 결혼 후에는 아내 유다연씨(32)와 딸 권서진(4) 그리고 장인·장모라는 든든한 후원군이 늘었다.
권순형(176cm)은 체격 조건이 돋보이는 선수는 아니다. 그렇다고 빠르거나 힘이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다. 동북중 시절 그는 또래보다 키가 5~6cm 작았다. 볼다툼을 벌이기라도 하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를 특별하게 만들어준 건 킥 능력이다. 그는 "어느 날 스포츠신문을 보다 기사 속에 '공은 사람보다 빠르다'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그 순간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곧바로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100m 거리에 공을 놓고 공으로 맞히는 연습으로 패스 정확도를 높이는 연습을 하는가 하면 골대 앞에 장애물을 세워두고 빈 곳으로 차 넣으며 슛 연습을 했다. 권순형은 날카로운 패스와 중거리 능력을 주무기로 1년 만에 중학 무대를 평정했다. 그는 중3 때 주전 미드필더로 올라서며 팀의 전국대회 4관왕을 이끄는 초고교급 선수가 됐다. 고려대에 진학해선 1년 선배 박주영(서울)으로부터 에이스의 상징인 '등번호 10'과 주장 완장을 물려받았다. 권순형은 프로에 와서도 팀 훈련 뒤에 롱패스 10개를 추가로 찼다. 그는 "하루에 10번 패스하는 거지만 100일이 되면 1000개나 된다. 연습량은 경기에서 반드시 드러난다"며 웃었다.
대기록 달성을 앞둔 그는 아직 이루고 싶은 게 많다. 버킷리스트 1번은 우승 트로피다. 권순형은 "프로에서 준우승(2017년)을 해봤지만, 아직 우승트로피는 한 번도 들어올리지 못했다. FA컵이든 리그든 정상을 밟아보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당장은 팀을 강등권에서 구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리그 10위 제주(승점 17)는 강등권인 11위 경남(승점 16)과 12위 인천(승점 15)에 쫓기고 있다. 권순형은 "운동장에서 쓰러지겠다는 각오로 팀의 부진 탈출을 돕겠다. 최근 팀에서 실시한 체력테스트(셔틀런)에서도 선수 30여명 중 5위 내에 들었기 때문에 체력은 문제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권순형의 꿈은 '제주의 제라드'가 되는 것이다. 리버풀(잉글랜드)의 전설적인 '중원사령관' 스티븐 제라드(은퇴)는 1998년부터 2015년까지 18년간 리버풀에서 뛰며 710경기에 출장했다. '리버풀의 심장'으로 불리는 그는 열성팬들이 많은 리버풀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선수다. 권순형은 "팬들에게 많이 뛰는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다"며 "제주를 위해 뛴 날보다 뛸 날이 적은 만큼 한 경기 한 경기 소중하게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