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는 지난 7월 사임한 이윤원 전 단장의 후임으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출신인 성민규(37) 단장을 선임했다고 지난 3일 발표했다. 프런트의 수장인 단장 자리가 공석으로 남겨진 지 46일 만이다. 긴 시간 고심을 거듭했고, 이미 무성했던 소문대로 성 스카우트가 중책을 맡았다. 롯데는 "활발한 출루에 기반한 '도전적 공격야구'라는 팀 컬러를 명확히 하고 이를 실현할 적임자로 메이저리그 출신 성 단장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성 단장은 1982년생이다. 팀 간판스타 이대호와 나이가 같다. 10개 구단 단장 가운데 최연소이고, 현역 단장 가운데 가장 베테랑인 김태룡 두산 단장과는 23세 차이가 난다. KBO 리그 KIA에서 잠시 선수 생활을 했고, 마이너리그 코치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를 거치면서 두루 경험을 쌓았다. 성적도, 리빌딩도 모두 잡지 못한 롯데는 '메이저리그에서 온 젊은 단장'이 팀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주기를 기대한 듯하다.
다만 과연 지금 롯데에게 필요한 것이 '파격'일지에 대한 의구심은 피할 수 없다. 롯데의 문제는 오래 전부터 '기본'이 갖춰지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팀 경기력과 구단 운영 방식 모두 그랬다. 롯데 야구가 올 시즌 조롱에 가까운 비난을 받은 이유는 기본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비상식적 플레이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눈을 의심하게 되는 황당한 실책 퍼레이드는 완벽하게 분석된 데이터와 그에 기반한 경기 운영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다.
더 문제는 롯데 선수 개개인의 능력만을 탓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구단은 강속구를 뿌리는 유망한 투수들을 한데 모아놓고도 제대로 키우거나 활용하지 못했다. 코치나 선수의 무능을 넘어 구단이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 올릴 만한 체계적 육성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탓이다.
심지어 이름값 높은 간판 선수들의 능력조차 최대치로 끌어내지 못했다. 전준우-손아섭-민병헌으로 이어지는 롯데 외야진은 공수 모두 국가대표급이지만, 이들의 시너지 효과를 끌어내기는커녕 세 선수가 함께 뛰는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기 일쑤였다. 팀 전체가 공멸하는 분위기가 시즌 내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그런 상황에서 간판 선수 한 명의 타순을 조정하는 데도 감독의 '결단'이 필요했던 팀이 바로 롯데다.
따라서 이윤원 전 단장과 양상문 전 감독의 동반 사퇴 이후 야구계에선 "지금 롯데는 10년이 걸리더라도 팀 체질을 밑바닥부터 바꿔 놓겠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가 가장 많이 나왔다. 지금 같은 상황과 분위기라면, 아무리 좋은 선수를 뽑아 놓아도 팀 내부에서 크게 성장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내부에 있는 '고인 물'보다 팀 밖에서 롯데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지켜봐 온 외부 인사가 새 단장에 적합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롯데 역시 실제로 예상 후보군 밖의 인물을 구단으로 불러 들였다.
물론 파격적인 인사가 늘 실패로 연결됐던 건 아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를 쓴 구단이 키움 히어로즈다. 히어로즈는 지난 2013년 염경엽 주루·작전 코치를 새 감독으로 임명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프로야구 감독 후보군 안에 포함되지 못했던 인사였다. 하지만 염 감독은 5년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뒤 SK로 이적해 더 큰 날개를 폈다.
염 감독의 후임으로 온 장정석 감독도 마찬가지다. 프로 지도자 경험이 없던 운영팀장 출신 젊은 사령탑은 세간의 걱정을 뒤집고 지난 3년간 키움 선수단에 적합한 리더로 충분한 검증을 받았다. 이런 키움의 현재 단장은 성 단장 전까지 최연소였던 42세 김치현 단장이다. 김 단장 역시 전략국제팀장 출신으로 구단 운영 방식 구축과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 해외 포스팅 업무 등을 담당하던 인물이다.
그러나 키움은 롯데와 근본부터 다른 팀이다. 모기업이 따로 없는 히어로즈는 주어진 여건 안에서 최소 비용으로 최대한의 자생력을 찾을 수 있는 운영 모델을 마련하는 게 필수였다. 외부의 간섭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환경 속에 신중한 선택과 과감한 모험을 통해 꾸준히 탄탄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갔다. 적어도 선수단 운영에 한해서는 그랬다.
반면 롯데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리그를 지켜 온 '클래식' 구단이다. 히어로즈와는 거의 모든 면에서 대척점에 있는 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오랜 기간 야구단을 운영해 온 모기업의 영향과 부산 팬들의 열정적인 혹은 과도한 관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롯데 단장'이란 자리의 압박감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희망적인 청사진을 그리고 있을 성 단장에게는 무리한 짐이 될 수 있다.
부임 첫 시즌 도중 감독을 내보낼 만큼 위기를 절감했던 롯데는 어쨌든 9회말 무사 만루의 구원 투수로 성 단장을 선택했다. 아직은 뜬구름과도 같은 메이저리그식 '공격 야구'의 부활을 꿈꾸면서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다. 성공 가능성은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 주사위는 이제 막 던져졌을 뿐이다. 롯데가 위기에서 찾은 해법이 진짜 변혁의 첫 걸음이 될지, 아니면 더 길을 잃고 표류하는 계기가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