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치라 쓰고 연기신(神)이라 읽는다. 본격적인 가을 스크린. '정의를 위해' 신념을 담보로 덤비는 두 양아치의 등장이 흥미롭다.
25일 개봉하는 영화 '양자물리학(이성태 감독)'과 내달 2일 개봉하는 '퍼펙트맨(용수 감독)'은 전혀 다른 장르와 분위기로 전혀 다른 스토리를 그리지만, 작품을 이끄는 주인공들은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일명 '삐끼' 출신의 클럽 사장 박해수와 '업장'을 관리하는 한량 건달 조진웅. 영화에서나 볼법한 캐릭터들은 목숨을 걸고 인생에 다시 없을 동앗줄, 아니 '금줄'을 잡았고, 캐릭터를 잡은 배우들은 그야말로 신나게 뛰어 놀았다.
'양자물리학'은 정의로운 클럽 사장 이찬우(박해수)가 유명 연예인의 마약 사건에 검찰, 정치계가 연결된 사실을 알고 업계 에이스들을 모아 대한민국의 썩은 권력에게 빅엿을 날리는 대리만족 범죄오락극이다. 극중 박해수는 죽어가는 업소도 살려낸다는 유흥계의 화타 이찬우 역할을 맡아 저 세상 말빨을 뽐내며 '높은신 분들'을 이리저리 요리한다.
'퍼펙트맨'은 까칠한 로펌 대표와 철없는 꼴통 건달이 사망보험금을 걸고 벌이는 인생 반전 코미디 영화다. 조진웅은 진중함과 심각함이라고는 1%도 없는 자유분방 인싸 캐릭터 영기로 분해 '왜 이제 연기했나' 싶었을 정도로 제 몸에 꼭 맞는 옷을 자랑한다. 미운데 미워할 수 없는, 약 오르는데 도와주고 싶은, 한 대 때리고 싶다가도 결국 토닥거리게 만드는 인물이 바로 영기다.
실제 만났다면 서로가 서로를 '극혐'했을 찬우와 영기지만, 꽤 많은 공통점을 통해 한 주 차이로 영화를 관람하게 될 관객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할 전망이다. 대사 많고, 패션 화려하고, 자존심은 없지만 의리와 가오는 충만하다. 영기는 질색하는 '쓰리피스 정장'이 찬우에게는 일상복이라는 것이 유일한 다름이랄까. 시종일관 '쟤 왜 저래' 볼멘소리가 나와도 미소가 뒤따르고, '목표달성' 결말은 속 시원하면서 어디에선가 또 제 자리에서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찬우와 영기를 응원하게 만든다.
그 중심에는 오랜만에 '미친 연기 터졌다'는 말을 전하게 만드는 박해수와 조진웅이 있다. 시작부터 '연기파 배우'로 분류되며 이제 연기력을 논할 시기는 지난 배우들이지만, 그럼에도 잘했다. 꽤 거슬릴정도로 현실감 없는 몇몇 스토리와 뚝뚝 끊어지는 개연성도 박해수와 조진웅의 연기 덕분에 시선이 분산된다. 재미? 메시지? 감동? 있지만 굳이 따지지 않아도 좋을 두 작품이다. 배우의 연기를 관람하는 것 만으로도 흡족하다는 것 역시 꼭 닮은꼴이다.
어디까지 대본이야? 능청스런 생활연기
긍정적인 이미지 파괴다. 폼 잡고 허세 부리지 않는다. 스스로 양아치임을 인정하고 움직인다. '양자물리학' 찬우와 '퍼펙트맨' 영기가 '귀엽게' 보이는 가장 큰 이유다. 공교롭게도 찬우와 영기는 극중 사투리를 쓴다는 공통점도 있다. 물론 영기는 네이티브 부산 사나이, 찬우는 고객 만족도를 위해 전국팔도 사투리를 모두 구사하는 것이지만, 조진웅과 박해수는 정감가는 사투리의 매력을 고스란히 전달하며 입에 모터 달린 듯 맛깔스러운 대사들을 쏟아낸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말똥말똥 반짝반짝 빛나는 두 배우의 눈빛이다. 스크린 첫 주연 신고식을 치르는 박해수는 매 장면 온 몸에 힘을 주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최근 작품에서 알게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진 연기를 보여줬던 조진웅은 '이게 관객이 애정하는 조진웅이지'라고 다시금 인정하게 만든다. 시나리오 대사와 애드리브를 적절히 섞으면서 다소 오글거릴 수 있는 중얼거림까지 현실적으로 연기해냈다. 연극계에 잔뼈가 굵은 티를 이렇게나 고맙게 내준다.
박해수는 인터뷰에서 "밑바닥 인생을 사는 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건강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가 전달되기를 바랐다. '내 주변에 이런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관계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며 "촬영 두 달 전부터 연습을 했기 때문에 현장에 갔을 땐 모든 것이 다 맞아 있었다. 모든 배우들이 진정성있게 매달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것이 카메라 밖으로도 보여질 것이라 믿는다"고 자신했다.
조진웅은 "영기는 무언가를 자제하면서 사는 애가 아니다. '오늘 설렁탕 먹자'고 했을 때 대부분이 우르르 설렁탕을 시킨다면 영기는 지가 먹고 싶은걸 시키는 애다. 순수하고 올곧다. 어떻게 보면 건달이라는 직업이 먼저 눈에 들어왔어야 하는데, 이 캐릭터는 반대였다. 영기라는 사람이 보이더라. 인물이 상황을 끌고가는 구조가 매력적이었고, 배우로서 '연기할거리'가 생겼다"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쓰리피스 정장 vs 화려하되 촌스러운
'양자물리학'과 '퍼펙트맨'은 보는 맛(?)도 쏠쏠하다. 누가봐도 직업 추측이 가능한 그 의상들을 박해수와 조진웅은 소화해내고야 말았다. 클럽 삐끼로 시작해 사장으로, 제 자리에서 최선의 신분 상승을 꿈꾸는 찬우는 새빨간 쓰리피스 정장을 차려입고 등장해 보는 이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쓰리피스 정장에 질색하는 영기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질색할 화려한 패턴의 점퍼로 촌스러움을 극대화 시킨다. 박해수, 조진웅이 평소 절대 입지 않을 옷이기에 흥미로움은 더 크다.
박해수는 "빨간색부터 자주색으로 나름의 톤 변화가 있다. 심지어 차도 빨간색이다"며 미소짓더니 "감독님과 '찬우의 색깔'을 떠올리다 정열의 빨간색으로 결정했다. 시원한 파란색도 생각했는데 빨간색이 주는 묘한 분위기가 있더라"고 설명했다. "돈 주니까 입었다"고 단언해 좌중을 폭소케 한 조진웅은 "감독님과 의상실장이 정해두고 날 세워둔채 하나씩 입혀 보더라. 감독 본인 소장용도 있다"며 "패션 자신감 두번 있다가는 난리날 것 같다. 나는 평소에 반바지도 잘 안 입는다. 슬리퍼만 신는 정도다"며 "체격이 좀 크기도 하고 화면이 더 부어 보이게 나오는 것도 있는 것 같다. 거기다 옷까지…. 혐오스러웠다면 죄송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추천 오디션" 내 식구 챙기는 의리
박해수와 조진웅은 작품을 위해 주연의 위치를 활용하기도 했다. 평소 눈여겨 봤던 배우들을 조심스레 추천한 것. 연기이기 때문에 말 통하고, 눈빛 통하는 감정은 중요하다. 파트너 잘 만나 연기를 더 잘할 수 있다면 작품에 도움이 될지언정 해가 되지는 않는다. 박해수에게는 임철수·박광선이, 조진웅에게는 김민석이 있었다.
박해수는 결혼 직전까지 룸메이트였던 임철수와 '양자물리학'에서 클럽사장과 이사로 호흡 맞췄다. '나를 위해 너를 희생하지 않는' 관계를 연기하기 위해 진짜 소울맞는 절친과 함께한 것. 울랄라세션 멤버로 잘 알려진 박광수는 연극 '남자충동'에서 인연 맺었고 박해수의 결혼식 축가를 부르기도 했다. 박해수는 "철수 같은 경우는 내가 추천한 동시에 오디션이 잡혀 있었다. 신기했다"며 "연극을 오래 하다보니 무대 인맥이 꽤 된다. 이번 작품에서 우연찮게 다들 만나게 돼 기뻤다"고 전했다.
조진웅은 전작 '광대들:풍문조작단'에서 현재 군 복무중인 김민석을 만난 후 '예쁜 동생'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뒀다. 때때로 '애기'라는 호칭으로 김민석을 표현하기도 한 조진웅은 "조금 올라오면 까불거릴법도 한데 우쭐대지 않더라. 그에 반해 시작이 연기가 아니었고, 어려운 시절도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 또 밝다. 할머니를 모시고, 잘 풀리지 않는 동료들을 챙기는 민석이 행동 하나하나가 예쁘더라. 그럼 보이게 예뻐해 줘야지. 전혀 닮지 않았지만 친동생 자리를 추천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