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창간해 올해 50주년을 맞은 일간스포츠는 국내 최초의 스포츠 신문인 만큼 스포츠 소식 외에 수많은 연예 소식을 전해왔다.
연예 기사에 빠질 수 없는 연예인들. 누구보다 빠르게 유행을 선도하는 당대 연예인들의 최신 뷰티 메이크업을 알아보면서, 우리나라의 시대별 화장 문화가 어떻게 유행하고, 변화했는지를 알아보았다.
일명 ‘방판’ 아줌마의 시대 1960년대 일명 ‘화장품 아줌마’ 등으로 불리며 가정집에 찾아가 직접 화장품을 시연하고 판매했던 방문판매 직원들이 생겨났다. 또한 윤복희의 미니스커트가 유행했던 1960년대 여성들은 눈썹이 두껍거나 아예 밀고 홍조를 띤 볼 터치와 핑크 펄 립스틱 등 소녀다운 인상을 풍기는 화장에 아이라이너로 눈매를 강조하는 것이 대세였다.
또렷한 윤곽! 강렬한 컬러가 대세 청바지와 통기타 문화가 주름잡던 1970년대에 가장 인기 있던 여성 스타일은 긴 생머리의 발랄한 여대생 스타일이었다. 눈썹을 뽑아서 정리하기 시작했고, 펄이 들어간 아이 섀도를 바르는 것이 크게 유행했었다. 당시 최신 메이크업 포인트는 둥글고 진한 눈 화장에 보라색·청색·갈색 등 컬러풀한 아이 섀도로 눈매에 화사함을 더하는 것이었다. 1971년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최초로 ‘오 마이 러브’ 메이크업 쇼를 주최하기도 했다.
컬러 TV 보급, 얼굴에 색을 입히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할인매장과 백화점을 통한 판매가 늘며 방문판매가 줄어들었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증가하면서 여성스러움을 당당히 드러내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또한 컬러 TV가 보급되면서 알록달록한 색조 화장이 유행했고, 서양 여성들처럼 얼굴의 윤곽을 살리는 입체 화장이 전성기를 맞았다. 한국의 화장품 산업이 급격히 발전하고, 피부 건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고급 화장품이 등장했다.
노화 방지! 기능성 화장품의 시대 1990년대는 자유와 개성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와 함께 유행이 급변하는 시기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 1인당 국민 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서자 기능성 화장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피부가 고운 우리나라 여성들은 화장품을 고르는데 무척 까다로워지고, 이런 국내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피부 영양과 보습, 미백, 주름 개선 등을 목적으로 하는 기능성 화장품 개발에 열을 올렸다. 스킨케어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기능성 화장품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자~연스럽게 ‘쌩얼 미인’의 시대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과장되고 진한 화장보다 깨끗한 피부 표현과 수분감이 느껴지는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내추럴 메이크업이 선호되기 시작했다. ‘도자기 피부’ ‘쌩얼 미인’ 이라는 유행어가 등장. 전형적인 서구 미인형 얼굴이 아니라 개성 있는 얼굴에 대한 선호가 높아졌다.
K-뷰티 안방시장을 넘어 세계로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가 대거 등장하며 한국 화장품 시장을 크게 확대하는 데 기여했고, 의학과 뷰티 산업이 손을 잡으며 메디컬 화장품과 자연주의 화장품이 화장품 시장을 양분하기 시작했다. 한류 열풍이 일본·중국 외에 동남아시아까지 휩쓸면서 이른바 케이(K)-뷰티 시대가 열렸다.